불자 佛子는 아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습니다.
불가 佛家의 가르침은 바람을 닮았습니다.
그 바람은 엄동설한에 파고드는 삭풍도 아니고 막 핀 꽃들을 훈계하듯 그 끝이 아직 매운 어제 분 바람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해 뜰 무렵 가볍게 부는 샛바람이며 사람을 간지럽히는 연풍이고 가을 정취를 돕는 갈바람 같습니다.
모르는 일이 태반이면서도 편하게 날아와 그대로 내게 앉은 가르침 하나는 ´인연´입니다.
몇 번인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다른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편 세리들은 사람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는 부정한 사람들이며 죄인이나 창녀, 이교도와 같은 부류로 취급받습니다.
사두가이도 유대 땅에 있던 한 종파로 늘 예수님을 예의 주시하며 허점을 노리던 사람들입니다.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시게 되는 장면의 주인공들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마태 22:30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으면 바리사이들이 모여 또 물었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바로 어제 나온 복음 말씀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런 바리사이인들과 세리들이 다시 나눠지고 있습니다.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가끔씩 조심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를 편들고 누구와 편먹고 싶을 때입니다.
늘 그런 유혹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할 때, 능력과 수준을 살핍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책이 어려웠다 그러면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시절 인연´이란 것이 있어서 그런 거다.
때가 되어야 익듯이 책하고 사람 사이도 언제나 그렇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루카 18:13
세리가 더 낫기 때문이거나 더 좋은 사람들이어서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고 반성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그 능력이 나를 찾아 깃드는 순간은 또 사람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인연´의 힘입니다.
그래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부지런히 제 갈 길을 가는 역할 役割.
하늘을 읽고 땅을 배우며 살아가는 일.
인연이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좋은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