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7

아침에,

by 강물처럼



불자 佛子는 아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습니다.


불가 佛家의 가르침은 바람을 닮았습니다.


그 바람은 엄동설한에 파고드는 삭풍도 아니고 막 핀 꽃들을 훈계하듯 그 끝이 아직 매운 어제 분 바람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해 뜰 무렵 가볍게 부는 샛바람이며 사람을 간지럽히는 연풍이고 가을 정취를 돕는 갈바람 같습니다.





모르는 일이 태반이면서도 편하게 날아와 그대로 내게 앉은 가르침 하나는 ´인연´입니다.


몇 번인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다른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편 세리들은 사람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는 부정한 사람들이며 죄인이나 창녀, 이교도와 같은 부류로 취급받습니다.


사두가이도 유대 땅에 있던 한 종파로 늘 예수님을 예의 주시하며 허점을 노리던 사람들입니다.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시게 되는 장면의 주인공들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마태 22:30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으면 바리사이들이 모여 또 물었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바로 어제 나온 복음 말씀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런 바리사이인들과 세리들이 다시 나눠지고 있습니다.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가끔씩 조심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를 편들고 누구와 편먹고 싶을 때입니다.


늘 그런 유혹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할 때, 능력과 수준을 살핍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책이 어려웠다 그러면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시절 인연´이란 것이 있어서 그런 거다.


때가 되어야 익듯이 책하고 사람 사이도 언제나 그렇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루카 18:13





세리가 더 낫기 때문이거나 더 좋은 사람들이어서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고 반성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그 능력이 나를 찾아 깃드는 순간은 또 사람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인연´의 힘입니다.


그래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부지런히 제 갈 길을 가는 역할 役割.


하늘을 읽고 땅을 배우며 살아가는 일.


인연이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좋은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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