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봄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어제 경험한 황사와 미세 먼지는 대단했습니다.
화사함이나 설렘, 봄이면 저절로 돋는 생기 있는 것들마저 두껍게 덧칠된 느낌.
하늘은 뿌옇고 풍경은 흐렸으며 가로수들은 박자가 맞지 않은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꽃은 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것이 생겼습니다.
´다 같이 있어야 완성되는 하나´
예전에는 ´내가´ 거기에 있느냐, 없느냐가 전부였습니다.
누가 있든 없든, ´내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더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꽃구경이든, 잔칫날이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이든 뭐든지 말입니다.
나 이외의 것은 그날의 사정에 불가했습니다.
사정이나 상황은 불가피한 것이 되기도 하고 타협 가능한 것이기도 하면서 유동적이고 가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봄이면 다 봄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하나의 감정이 있습니다.
저절로, 아무렇지 않게, 흔하던, 일상이었던 것들에 대한 관계의 재정립입니다.
내가 나가고 싶다고 나가는 것이 아니며,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여태까지와 다른 평범한 사실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가 좋은 시절인 줄 알겠다는 말을 가끔 적기도 합니다.
하기 싫을 때에도 이제 그 생각이 납니다.
피곤하고 귀찮은 감이 드는 것이 인간적이지만 그럴 때 더 잘하고 싶은 것도 인간적입니다.
봄이려거든 꽃도 피고 하늘도 좋고 냇물도 흘러야 하는 줄 아는 것이 좋습니다.
너도 봄이고 나도 봄이어야 봄인 것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합니다.
<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 요한 13:32
두 분이 한 분이신 것을 사순 마지막 주에, 꽃이 피었지만 많이 흐렸던 날에 떠올렸습니다.
하나로 흐르는 깊은 강을 그렸습니다.
나는 그분을 모른다던 베드로의 말이나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행동도 거기 함께 흐릅니다.
또한 저도 흐르고자 합니다.
흐르는 것들이 모두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