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일본 영화의,

by 강물처럼

'안경'이라고 쓰면 안 된다.

명사마저도 전달이 안 되는 시대다.

차라리 동사가 그런 면에서는 편하다. 상대와 내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바디랭귀지' 정도만 통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무엇을 먹는가는 생각보다 설명이 필요한 말이지만 '먹는다'는 말은 동작 하나로 충분하다.

내가 아는 '토마토'가 상대가 아는 '토마토'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어로 안경은 '메가네'다.

영화 타이틀이 어째서 '메가네'여야 하고 '안경'은 안 되는지는 일본어로 영화를 보는 것과 자막을 읽어가면서 볼 때 생겨나는 차이와 비슷하다. 처음 한 번 봤을 때와 열 번 만났을 때의 느낌이 같을 수 없는 이치다.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는 것도 인정!

영화를 보는 날과 시간, 나의 주변 상태와 공기의 밀도, 또는 영화관에 들어오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까지.

인정!

우리는 애초부터 순수하게 영화를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메가네'라는 영화를 볼만한 '자격 또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오키나와에서 경비행기로 날아갈 것인가?

아니면 규슈 어딘가에서 출발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떠날 것인가.

사실 방법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How to'가 아니라 'anyway'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니면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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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을 찾아 요론 섬에 온 사람은 정상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당신은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인가, 그 정도도 못하는 사람인가.

그 사람은 안경을 썼고 안경을 벗는다.

벗겨진다는 말이 정확하다.

영화는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영화를 보는 나는 정확한 시선으로 열심히 보고 만다.

그 차이가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아서 쓸쓸해지는 장면들이 당신을 괜찮냐며 일으켜 준다.

자기 닮은 사람을 바라볼 때 드는 느낌이 내 살아온 세월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풍경의 주인공이 되는 곳, 요론 섬에 가라.

거기는 오키나와에서 배 타고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다.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곳에 숨어 있다.

말을 잘못했다.

숨어 있는 곳이 아니고 당신이 찾지 못하는 곳이다.

사느라 바빠서.

배운 대로 사느라 잊어버려서.

혹은 사는 대로 사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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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갔더라면'

내 작은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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