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밥상머리 8

병아리는 스스로

by 강물처럼

식탁에 앉으면 그런 기대감이 있다.

오늘은 요 녀석들이 무슨 말을 떠들어댈까.

그때 나는 어떤 식으로 끼어들어 볼까.

아무 말이 없이 밥을 먹고 있으면 오히려 내가 심심해서 뭐라도 떠들기를 은근히 바란다.

드디어 산이가 말을 꺼냈다.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데 앞에 문이 세 개가 있어. 하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문이고, 하나는 부자가 되는 문, 마지막 하나는 얼굴이 잘생겨지는 문이야. 어떤 문을 먼저 열까?"


"답은 차문!"


"차문을 먼저 열고 나가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옳거니' 이거다 싶었다.

'문門'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문이란 것은 흔하게 보더라도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때 꼭 지나야 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이거야말로 '아싸, 가오리다!'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좋은 먹잇감을 낚아챈 기분이다.

딸아이, 강이는 여전히 골똘하게 생각 중이다.

밥을 입에 물고 '부자가 되는 문'에는 뭐가 있냐고 묻는다.

'차문'을 모두 놓친 것이 통쾌했던지 산이는 밥을 한수저 크게 떠서 입에 문다.


"이건 아주 멋진 말인데?"

"아빠가 산이 문제를 듣고 좋은 말이 생각났어, 근데 좀 어려운 말이야."

우리 아이들은 곧잘 이런 분위기에 노출되었던 탓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분위기가 좋다.

무게가 없는 솜털 같은 부피가 공간에 들어서는 느낌을 좋아한다.

책상이 아닌 식탁에 앉아서 말하고 듣는 그리고 입에는 밥이 들어가는 이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냥 편하게 들어, 이런 말이 있구나 하고."

"다음에 너희가 크면 또 어디에선가 듣게 될 거니까. 오늘은 다 듣고서 잊어버려도 돼."

다른 때와 다르게 서두가 길다.

앞이 길면 그 설명은 효과가 떨어질 확률이 높다.

연설이든 수업이든 무엇이든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나 글을 쓸 때는 처음은 간결할수록 좋다.


"닭이 알을 깨고 나오잖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껍질을 깨뜨리잖아?"

아이들은 뜬금없는 등장인물에 호기심이 부쩍 끓어오른다.

거기에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껍질'이나 '깨뜨리다'와 같은 심상치 않은 단어들이 등장한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먹고 산다.

그 표정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거라서 좀처럼 놓치는 일이 없다.

그 표정을 잘 읽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솜씨가 된다.

나는 성공으로 한 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산이가 말한 '차문'이란 말을 아빠는 듣고서 이거 정말 멋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세 가지 문이란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그전에 차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은 우스개 소리 같아도 사실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소개를 한다.

"차 안에 있다는 것은 세상에 나가지 않은 알 속에 있는 것과 같아."

일부러 효과를 높이기 위해 냉장고에서 계란을 하나 꺼내온다.

계란 껍데기를 두드리면서 이 껍질이 '차문'이고 지금 이 계란 속에는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병아리가 있다고 말해준다.

"이 밖에 있는 세 가지 문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여기 껍질을 깨뜨리고 나와야겠지?"

아이들 눈이 초롱해져서 나는 저절로 흥이 높아진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바로 알에서 나오는 것이고 차 안에서 '차문'을 열고 나오는 것과 같다고 연속해서 설명한다.


"그럴 때 병아리는 스스로 알을 깨뜨리고 나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지 못하는 거야.

병아리가 안에서 알을 깨뜨릴 때 밖에서도 어미 닭이 도와주는 거야.

하지만 아주 조금씩만 부리로 두드려주지, 전부를 깨뜨려주지는 않는다.

어미닭도 병아리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지만 알을 다 깨뜨려준다는 것은 새끼를 오히려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거든."

산이와 강이는 이제 완전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나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머릿속으로 정리할 시간을 준다.

그래야 자신들 스스로 그 알에 들어가 있는 '병아리'가 되어 알을 쪼기 시작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줄탁동시가 실현되는 것이다, 아침 밥상에서.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새가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

줄과 탁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줄탁동시라고 부르며 수행승의 역량을 알아보고 깨달음에 이르는 사제간師弟間의 두터운 인연을 비유하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다.



아침에 줄탁동시라는 어려운 말을 아이들이 배우길 바라고 꺼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 하나 하고 싶었다고 하면 믿어줄까.

이왕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오래 기억된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겠다 싶다.

날이 갈수록 내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얼마 갖고 있지 않은 지식이란 것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고물이 되어 영 쓸모가 없어지기 전에 기름이라도 한 번 더 바르고 거미줄이나 주름이 들지 않도록 닦아주어야겠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이렇듯 하나라도 들려줄만한 것들을 꺼내 들고 한 시절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날이 가는 것만을 아쉬워하느라 아무것도 나눈 것이 없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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