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오물 꼭꼭
산이는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잘 익은 김치를 달달 볶을 때부터 알아채고 덤빈다.
그러면서 '고기' 많이 넣어달라고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는 무슨 고기인지 물어볼 걸 그랬다.
요즘 부쩍 요리에 관심을 보이면서 옆에서 칼질도 해댄다.
멸치 머리 떼는 것을 한 번 해보더니 어제는 그만 사양했다.
언제 라면 끓이는 법이라도 알려줄까 싶다.
모처럼 아침 식탁에 올라온 김치찌개는 시큼한 향이 사람을 은근 자극했다.
침샘이 고이고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에 앉았다.
두부도 맛깔스럽게 하얗다.
산이는 맛을 기가 막히게 구분해내는 솜씨가 있다.
지난번에 먹은 것과 항상 비교를 하면서 맛을 평가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가장 맛있는 상태를 나름대로 요구하고 또 강조하기도 한다.
산이는 까다로운 식객 食客이라 할 만하다.
역시 언제나 그렇듯이 찌개에 들어간 두부를 먹고서 한 줄 평을 쏟는다.
"저번에 먹었던 두부가 더 맛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좋지 않다거나 맛이 없다고 말하기보다 어느 것이 더 맛있더라고 일러준다.
막상 그 자리에서는 거기까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언제나 산이는 그렇게 말하는 편이다.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는 맛있다는 말도 잘하지 않는 편이지만 맛없다는 말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사실 무엇이든 그런 편인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도 아무리 재미없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보고, 지겨운 책을 들고서도 잘 내려놓지 못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기호 嗜好가 전혀 없는 사람도 아니다.
20년 가까이 듣고 있는 라디오 음악 방송도 있고 매년 가을이면 꼭 찾아가는 산도 있다.
엊그제는 익산에 와서 산 지 15년이 되어가는데 흔쾌히 밥 먹자고 그럴만한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다고 그랬더니 동행하던 사람이 속으로 비웃었다고 그런다.
하지만 그 두 사람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다 듣고 나서 자기 생각이 짧았다고 다시 고쳐 말해줬다.
외국에 가서도 그 나라 음식으로 지내는 것을 좋아라 한다.
나도 두부를 좋아한다.
특히나 아프고 나서는 두부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
오늘 아침 두부는 확실히 텁텁했고 덜 향긋했으며 식감도 별로였다.
산이가 제대로 지적했다.
하지만 산이와 강이에게 내가 했던 말은 다른 말이었다.
'내가 이탈리아에 갔는데, 자꾸 김치만 먹겠다고 그러면 내가 잘못이야, 이탈리아가 잘못이야?'
비유가 적절했는지 어땠는지는 따지기 전에 우선 떠오르는 대로 말을 꺼냈다.
아이들이 당연하다며 '내가'잘못했다에 맞장구를 쳤다.
조금 양보해줄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해맑게 덤비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어서는 안 된다.
맛이 있고 없고도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맛이란 게 원래 서로 다 다르기 마련이야.
세상에는 백 개도 넘는 두부 종류가 있는데,
내 입에 맛있는 것만 먹는다면 나머지 두부를 먹을 기회는 없어지고 말아.
아빠는 이것저것 먹어보는 쪽을 선택할 것 같은데?
아이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어른스러운 것을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먹지 않더라도 나중에 얼마든지 스스로 알아서 챙겨 먹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것도 다 알겠다.
다만 아침 식탁에서 아이들하고 뭐라도 하나 꺼내놓고 떠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내가 잘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아주 멋진 말이 떠올랐다.
이건 메모라도 해두고 싶었을 만큼 그 순간 황홀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것을 잘했던 사람이 지금 여기에서 이것도 잘하는 거다.'
어린 강이는 무슨 말이냐며 더 물었지만 산이는 말뜻을 알아주었다.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말이다.
봄이 지나는 것만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봄인 것을 만끽하고 지내는 것이 다음을 위해서 바른 자세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자리에서 그것을 서툴게 하다 보니 늘 나는 한쪽 어깨가 기울어져 걸었던 것 같다.
김치찌개는 맛있다.
밥을 오물오물 꼭꼭 씹고 꿀꺽 삼킨다.
물을 한 잔 마시면서도 맛있게 마신다.
한 글자 한 글자 떠오르는 순간을 보기 좋게 세워놓는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있어도 나쁜 경험은 없다.
카르페디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