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먹어!
여름에 별미 중에 하나가 콩나물국이다.
콩나물국이 맛이 있어봤자 콩나물국이지, 뭐 특별하다고? 별미라고까지 부르느냐 싶겠지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면 그야말로 금장 옥액 金漿玉液이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제 아침 식사 중에 전날 저녁에 냉장고에 두었던 콩나물국을 꺼냈다.
강이는 식성도 나와 비슷해서 '미역줄기 볶음'을 좋아한다.
김치도 적당히 맛이 익어서 밥맛을 돋운다.
아이들과 나는 일본 전통 음식 '나또'를 또 의외로 잘 먹는 편이다.
계란 프라이는 하루 중에서 아침이 가장 어울리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산이와 나는 반숙을 강이는 완숙파派다.
애들 엄마는 아침을 챙겨주긴 하지만 같이 숟가락을 뜨지는 않는다.
함께 식사를 하면 좋겠지만 당사자는 아침을 먹는 일이 안 먹는 일보다 괴로운 듯해서 따로 권하지는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침을 우리끼리 ( 산이 강이 그리고 나) 만들어 먹고 애들 엄마에게 늦잠 자는 날을 하루 제공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재미있자는 것이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바다.
쉼이 재미있고 먹는 일이 재미있으면 몸에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마침 산이와 강이는 요리에 관심이 높아지는 나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 수요일이나 목요일 하루는 우리가 아침 준비를 하는 일상도 좋을 거 같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되고 그렇게 반복하다 습관이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래, 일단 따로 챙겨놓고 '콩나물국'으로 얼른 돌아가자.
조금 있으면 식탁 위에 오늘 아침 반찬들이 옹기종기 모여들 테니까.
산이는, 내가 말했었던가?
산이는 나름 정교한 미식가다. 맛 감별사다.
어느 정도냐 하면 토마토소스를 어느 회사 제품을 썼는지 가려낸다.
파스타를 만들 때 따로 케첩을 넣었는지 넣지 않았는지 따져서 그때그때 맛이 어떻게 다른지 냉정하게 평가한다.
면발이 씹히는 감도 感度까지 말할 때는 밉상이다.
'그냥 먹어!'
속으로 몇 번이나 저 소릴 삼켰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음식이 너한테 맞지 않으면 네가 그 음식에 맞추면 쉬워진다.'
억지스럽고 괴기스러운 장면일 수도 있지만 더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산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설법 說法이겠지만,
'모든 식재료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산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토리코'는 항상 그렇게 외치잖냐.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네 특별한 감각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더 넓고 커지기를 또 바란다.
다 안고서 바다가 되고, 다 품어서 산이 되는 거니까.
아, 맞다. 또! '콩나물국'
그래, 시원하게 마시는 콩나물국은 은근한 맛이 난다.
사실 평소에도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거나 맛있어서 죽을 것 같은 적은 거의 없다.
콩나물국과 미역국이 대표적으로 그런 음식이다.
즐겨 먹지만 그렇다고 없어서 아쉽거나 굳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평범하고 흔한 것들.
누구나 쉽게 시도하지만 맛있게 끓여내기에는 들어가는 것도 별로 없어서 솜씨로 내놓아야 하는 맑은 물맛.
나에게 특별한 감동이란 이런 것이다.
어쩌면 나야말로 산이처럼 성가신 '정서 감별사'인지 모른다.
맛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나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사는 이는 아무래도 도 道가 높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새삼스레 그리고 많이 늦은 감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내 작은 감사를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흔연스럽게 받아주길 바란다.
흠, 아무래도 이거 실례가 크다.
아닌가, 콩나물국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가.
그거 하나 써보자고 했던 것이 이렇게 가지에서 가지로 뻗어 나는 스토리가 주야장천 晝夜長川이다.
그러나 그거 아는가.
마음 가는 대로 먹는 맛처럼 마음 가는 대로 쓰는 맛도 사는 데 한몫을 한다.
재미있다, 쓰다라는 동사를 써놓고 보니 두 겹, 세 겹으로 보이는 모양새가 또 재미있어서 해찰 부리기로 한다.
하하, '해찰'이란 녀석도 정말 오랜만이다.
오늘은 완전 날 잡았다.
아무래도 너는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 아쉽더라도 조금만 참아다오.
마음대로 쓰는 맛에서 '쓴다'는 돈을 쓰다에 쓰다여도 좋겠지만 여기에서는 글을 쓰다로 간다.
돈 쓰는 재미 못지않게 글 쓰는 재미에 빠져보는 것도 한 번뿐인 인생을 위해 좋은 일일 듯하다.
"아빠, 맛이 안 나!"
차갑게 식힌 콩나물국을 떠 마시면서 산이는 감각을 혀끝에 집중했을 것이다.
맛있긴 한데 맛이 안 나.
흥미로운 표현이구나. 너!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너, 코를 막고 뭘 먹으면 무슨 맛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지?
그때는 냄새 입자를 후각이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그런 거잖아."
나는 콩나물국을 그릇째 들고 마셔본다.
역시 솜씨 좋게 끓여낸 맛이다. 크
"음식에 있는 이런 맛이라든지 냄새 입자들이 차가울 때는 잘 안 움직이는 거야.
사람도 따뜻해야 밖에 나오는 것처럼 입자나 분자 같은 것들도 추울 땐 웅크리고 있거든."
오, 나는 과학적인 사람이 아닌데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다음 십 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막막하다.
산이는 끄덕였다. 당연히 끄덕여야지. 십 년 내공의 결산인데 말이다.
내가 뱉은 말이 옆에 앉은 산이에게는 이해가 되었다면 앞에 앉은 강이에게는 미소를 피워냈다.
"아빠, 내가 알겠는데 그거잖아.
사람 마음이 따뜻하니까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는 거, 맞지?"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일석이조? 일거양득?
그런 흔한 말 말고 나는 시처럼 써야 할 의무가 생겼다.
우선 제목을 뭐라고 해야 좋을까, 한 3박 4일 고민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기는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