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무렵 / 김남주

시의,

by 강물처럼

추석 무렵 / 김남주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 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흩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기 덩치만 한 똥을 동그랗게 뭉쳐 앞발과 뒷발로 번갈아가면서 옮기는 장면은 따스했다.

어린 내 눈에도 그것은 부드러운 곡선이 허공에 그리는 칸타빌레였다.

그것은 흐르고 있었고 반짝였으며 노래하듯 하였었다.

물이 아니라 물결, 숨이 아니라 숨결, 나무가 아니라 나뭇결이었다.

까치의 지저귐이 지나가는 순간 파장, 떨림, 여운이 한 데 섞여서 내 감각에 와 닿는 아침 기운을 뭉뚱그리면 그러한 결이 남는다. 투명한 선들이 무수히 쏟아져 만들어내는 접촉 같은 것을 나는 결이라고 불러야겠거니.

추석이라는 말은 나에게 결을 상기시킨다.

흘러가버린 내 어린 날에 추석 바람이 들면 나는 휘파람을 분다.

신작로가 깔리지 않은 자갈길을 따라 오래 걸었어도 좋았던 기억 하나로 전이되는 그 못난 시절아,

나는 불로리로 가는 길을 다 잊고 이제는 찾아가라도 해도 쓸쓸해서 싫다.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데서부터 얼마를 걸어가면 송氏들 집성촌에 가 닿을까.

할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는 다 늙었고 나는 어중간한데 우리 아이들은 쇠똥구리를 본 적이 없다.

별도 잘 안 보는데 초승달은 또 뭐고, 그것이 째지도록 웃는다고 하면 아마 맹랑하게 웃어넘길 것이다.

오늘은 늦었고 내일이라도 일찍 아이들을 깨워 함라산에라도 다녀와야겠다.

이슬이 주렁주렁 매달린 거미줄이라도 찾아내면 영롱하지?라고 말을 붙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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