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고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이 끝났습니다
작품 하나를 고맙게 읽었습니다.
사카구찌안고 坂口安吾의 소설 '桜の森の満開の下' 벚나무 만개한 숲 아래.
미학 美學이란 말은 내 평생의 화두입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가능한 그것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이처럼 벚나무숲을 헤맬 것을 압니다.
그래서 따스하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내 소감을 다른 이에게 전염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그의 미학 속으로 내가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짧게 소감을 시로 적어봤습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미학 美學
벚나무 숲이 절정이었습니다
숲 한가운데에 깊은 허공 虛空을 키우는 벚나무 한 그루 있었습니다.
바람이 거기에서 나고 늘 꽃이 졌습니다.
하늘을 덮고 바위를 덮고 길을 다 덮으면서 흩날리는 꽃잎.
그 나무 아래 앉아 죽기로 했습니다.
떨어지는 모든 순간이 연주 같았습니다.
Birth & Death.
삶은 거기에서 완성되기로 아니면, 아니면 아궁이라도.
공동 空洞을 채우며 쏟아지는 작고 어려운 꽃들에게 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저 멀리 날아가기를 바라 주었습니다.
벚꽃 아래 묻히는 팔이며 발, 내 머리가 사뭇 예쁘다 할만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이 사랑을 업고, 죽이고, 잃어가는 일이 봄처럼 피었다가 지는,
벚나무 만개한 숲으로 가야겠습니다.
거기 앉아서 옛날 일들은 하나씩 다 까먹고 말아야겠습니다.
다시 바람은 불고 꽃처럼 세월이 날립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