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듣는 사람도 그 말을 하는 사람도 편안해지는 말입니다.
요즘은 늘 쓰는 말이어서 감도 感度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같습니다.
이것도 구별해서 사용한다면 꽤나 피곤한 스타일로 간주될 듯합니다.
저는 구분합니다.
덜 사적이거나 여럿이 공유하는 공간, 예를 들면 SNS 같은 데서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눕니다.
감사 感謝는 사실 일본어입니다.
저 뒤에 보이는 글자, 사 謝는 확실히 일본의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한 글자가 됩니다.
사례하고, 갚고, 양보하고, 사죄하며 부끄러워하는 감정들이 모여 있습니다.
좋긴 하지만 좋은 것만으로는 다가 아닌 벚꽃이 지는 애상 哀想을 거기에 더합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감겨오는 일, 그렇게 느끼는 데서부터 추상에서 구상으로 구현되는 고마움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순 우리말과 구분 없이 함께 쓰기에는 감정적 괴리 현상이 빚어질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일본에 관련된 것이라면, 올바로 지적하기 전에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매국노부터 시작해서 사람 됨됨이까지 거론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상황과 입장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서로 모르기는 매일반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우리 역사만큼이나 상처가 많다는 것을 먼저 보듬는 자세, 그것이 우선이지 화낸다고 좋아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갑다는 말 ´반´은 한에서 왔고 그 ´한´은 큰 것이어서 신과 같이 ´크고 밝은 존재´를 본 듯 좋다는 인사를 어제 드렸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경외의 마음을 좇았습니다.
일상 언어에도 그렇고 집안 곳곳 사람들 다니는 곳에는 언제나 신과 함께였습니다.
´고맙다´에 나오는 ´고마´야말로 ´신 神, 존경´을 뜻한다고 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는 그러니까 거룩하고 존귀하다는 칭송인 것입니다. 특별 대우이며 그야말로 예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더 자주 사용합니다.
친구에게, 그리고 정말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잘 써집니다.
오늘 새벽에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랬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수님. ´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 요한 15:16
5월은 감사하고 고마운 것들을 꺼내어 닦아보는 계절인 듯합니다.
저는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맙고 감사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