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72

아침에,

by 강물처럼



대기가 불안정한 듯싶습니다.

잠결에 들었던 빗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사람을 위협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오면서 밖은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해 월요일 아침은 환하고 맑았으면 합니다.



시간을 토요일 오전, 짧게 인사를 올렸던 때로 돌려보겠습니다.

6시간가량 걷던 그 무렵에 저는 한마디로 상쾌함 자체였습니다.

정작 달달한 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 편인데 어떤 말이 좋을까 궁리해 보니, 그 말이 떠오릅니다.

저를 달달하게 만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지리산의 새벽 기운은 막강했습니다.

바람도 불고 춥기도 했지만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내게 이식된 기분이었습니다.

´나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건가? ´

아마 그 즐거움은 거기에서 오는 것이었을 겁니다.

두려움, 어려움, 불편함.

그날 그 지리산 길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걸었습니다.

그 사람들 틈에서 저는 보이지 않게 허리 복대를 차고 배낭을 메고 걸으면서 실컷 긴장했습니다.

허리 디스크를 가지고 있고 허리 근육이 손상되어 어떤 날은 변기에 앉는 것도 힘들 때가 있는데 과연 괜찮을까 싶었습니다.

추천받은 배낭을 따로 구입해 놓고 1주일 전부터 각오를 다져보기도 하면서 꼭 스물다섯 그때처럼 설렜습니다.

95년 8월 15일, 25살 한국인 청년은 그날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에 오릅니다.

3,700미터가 넘는 거기를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도 비가 온 뒤였습니다.

한라산 위에 지리산을 얹어 놓으면 후지산 높이가 됩니다.

거기를 내려오면서 다음 목표는 ´킬리만자로´라고 호기롭게 정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다 잊었던 그 기억들이 세석 대피소에서 내려오던 길에 떠올랐습니다.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천왕봉 정상도 다 보고 저녁 7시 이전에 내려가서 개운하게 씻고 가볍게 저녁 묵상을 할 것 같았습니다.

정말이지 건강해진 것 같아 마음이 달떴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피소가 문을 열지 않은 관계로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걸음이 빨랐습니다.

하루 안에 목표로 했던 곳까지 가닿으려는 의지가 꼿꼿해 보였습니다.

세석 대피소에서 6킬로를 더 가면 천왕봉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우선 오후 3시부터는 그쪽으로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 25km를 걸어왔던 것입니다.

때때로 둘레길을 걷고 마실길도 걸으면서 20Km 거리에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지리산 길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 가장 의미 있게 깨우친 것이기도 합니다.

겉만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것들도 세월을 함께 지내왔다는 것.

생전 처음 왼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의 통증을 경험했습니다.

핏줄도 인대도 힘줄도 다들 오십이 넘었을 건데, 그들에게 무심했습니다.

뼈만 생각했고 기운이 떨어질까 봐 그것만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나 한 사람을 위해 움직여 주는데 정작 ´주인´인 나는 세세하지 못했습니다.

내리막길 6km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절정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것들이 달라붙어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았습니다.

한쪽 다리를 끌면서 그 비탈길을 내려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내려왔는데 남은 길 5.2km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을 보고 틀림없이 잘못된 표지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표지판이 나오면서 덜컥 겁이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잘못하면 119 부르게 되겠군...

저녁 8시, 그러니까 4시간 동안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7만 보를 걷고 난 두 다리는 남의 다리 같았습니다.

하루가 다 지날 때까지 퉁퉁 부은 것이 가라앉지 않고 지금은 11자로 엉거주춤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더 아프고 싶습니다. ´

자리에 앉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서 눈썹, 코, 귀만 안 아프네.. 그러면서 웃었습니다.

왜 저는 이런 것이 좋을까요.

또 갈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은 줄 알고 고마운 것에 고마워하는 것.

그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나를 맡기고 싶은 것입니다.

글을 잘 쓰려는 것도 아니고 기도가 더 절실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자연 같아야 무엇을 해도 사람 같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늘 하는 말처럼 자본은 급하고 직선이며 높아지지만 자연은 돌아가고 수많은 곡선이며 낮아지는 울림입니다.

자꾸 그 재미있는 장면에 빠져보고 싶은 것입니다.



<내 주인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 1:43



사람들이 안다고 떠드는 것들이 지리산을 닮지 않아 뾰족합니다. 뾰족하니까 날카롭고 거기에 베고 또는 베이고, 그것으로 휘두릅니다. 그들이 부럽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지리산의 지 智는 지혜롭습니다.



그거 아시는지요.

토요일, 일요일, 이틀이었지만 꽤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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