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01

아침에,

by 강물처럼

은연중에 아니면 막연히 그럴 거라고 여기는 것들로 자신의 주변을 채웁니다.


잠을 자면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것부터 다시 밤이 찾아오고 자리에 눕는 일까지 예측 가능한 삶을 선호합니다. 그것을 보장해 주는 직장, 사람, 사회, 국가, 종교를 원하고 찾습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합니다. 나의 일상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야말로 ´하느님´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계절에 맞춰 옷을 입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이니까 짧고 가벼운 옷을 입고 겨울이니까 두껍고 따뜻한 옷을 찾습니다. 옷 먼저 챙겨 입었다고 계절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 계절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것은 보험에 들어두고 상황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끌어들여 비가 오나 눈이 오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하늘에 맡겨놓고 그 사이 우리는 또 방법들을 강구합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 가능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탐구합니다. 점점 하늘과 사람의 위치가 바뀌어 갑니다. 우리를 맡아줬던, 우리가 맡겼던 일들이 우리들 손에서 해결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무슨 무슨 용 用이 많아집니다. 신사용, 숙녀용, 여름용, 겨울용... 하느님도 그렇게 갖춰집니다.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예비할 수 없거나 준비할 수 없을 때에는 두려움과 긴장이 사람을 돕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이 절실해지던가요. 결과를 다 알고서도 절실하다면 몸이 이상한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가슴 떨리는 고백이 가능한 사람은 연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잘 모를 때, 확신이 없을 때, 예를 들어 수술실에 실려가는 아침에 ´하느님´ 그런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이거 아니면 안 되는 것,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없는 경우를 사람들은 피해 가고 싶어 합니다. ´그거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지켜볼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나를 절박하게 몰아가는 것은 거부합니다. 마음이 달달한 것에 길들여졌습니다. 슬픔이 빠진 슬픔을 맛보면서 슬퍼합니다. 모든 일에 확률이 간섭하게 되고 그에 따라 희로애락의 순도가 달라집니다. 라면 수프를 김치찌개에 몰래 넣으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맛있으면 됐지.



종교 없이 살아가는 마음에도, 종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 마음에도 ´아이고 부처님´이 생겨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물방울이 번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꺼내 입는 옷에는 ´무슨 용´이라고 쓰여있는, 꿈을 꿉니다.


디스플레이된 소품들이 즐비한 쇼윈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러움과 감탄이 가득합니다. 오늘 하루는 저것으로,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것으로 또 살아보기로 하는 사람들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꿈을 꿉니다.



가난한 하느님은 비를 다 맞습니다.


브랜드를 걸치지 않고 그 발에 신고 계시는 것은 무엇인지요.



마땅히 사제들은 넘어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실망과 후회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그분들의 몫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오늘에서야 들었습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일이 쉬운 일이던가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래서 사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이제 알아듣겠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오 10:22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계절에는 무엇을 입어야 할지요.


입고 싶은 것인지 입어야 할 것인지 우선 거기서부터 천천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 수도자들에게 건강한 건강이 허락되기를 같이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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