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제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차 안에서 딸아이가 물어왔습니다.
"아빠, 내가 준 책 봤어?"
평소에 책 읽어야 한다고 말해왔던 터라 변명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책 보느라 아직 안 봤어."
거울로 보이는 딸아이는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거실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아빠, 이거 읽어봐,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
우선 말이 예쁘고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살짝 무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상 위에 있던 그 책이었습니다.
그날도 학생들 기말시험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치과에도 다녀왔고 산에도 다녀왔으며 또 배산 공원도 걸었습니다.
비가 내렸고 금요일 밤에는 치킨도 시켜 먹으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딸아이가 말한 동화책은 거실에 있는 큰 테이블 위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누워있어야 괜찮아지는 고급이며 고질적인 그것, 허리 통증입니다.
이렇게 한 번씩 들쑤실 때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제야 동화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날 며칠이 거기 있으면서 지났는데도 제목을 몰랐습니다.
´동화책´을 볼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책을 가지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내가 아는 이야기,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다 보이는 크고 넓은 페이지를 가진 책이었습니다.
얼마 만에 읽는 동화책인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끝까지 읽은 동화책은 이것이 처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진지하게 마음으로.
중간 조금 넘어서 시큰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 페이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놓고 다음을 이어서 봤습니다.
딸아이에게 어느 부분이 인상 깊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나와 같을까 궁금했습니다.
다시 차 안에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강이야, 그 책 정말 좋더라."
유효 기간이 지나서 그랬는지 아니면 빗방울이 긋기 시작한 하늘 때문이었는지 아이는 창밖에 관심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내 말을 들었는지 그것도 알지 못하고,
저는 저대로, 드디어 딸이 권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세월이 제 모습을 과시하는 모습 중에 가장 동화적이었습니다. 나도 그럴 때가 됐구나...
"아빠도 미수를 위해서 기도해 줘."
차가 우회전을 하고 골목 하나를 지나면 곧 학원 앞이었습니다.
´미수´
그래 거기 책에 나왔던 아이, ´이미수´든지 ´서미수´든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울던 아이.
나는 이런 식으로 동화 같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정말 없는데, 순간 어색했습니다.
그나마 상대가 딸이어서 그런대로 넘어갈 만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럴게."
그 책은 입양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엄마´
세상에는 하느님도 계셔야 하고 엄마도 있어야 합니다. 그 둘 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좋은 일인 듯했습니다. 엄마를 좀 많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동화책을 읽고 들었습니다. 엄마 같은 바다, 엄마 같은 산, 엄마 같은 책, 엄마 같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입양아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봐야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여야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마태오 9:38
엄마랑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든든한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