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서 아기 우는소리가 났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앙´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듣긴 했는데 첫인사가 제법 산뜻했습니다.
반갑다, 아기야.
´울 것밖엔 더 갖고 나온 게 없으니까. ´
쓸쓸하고 가난하고 틉틉한 저 문장을 골동품 가게에서 만져 본 것 같은 이 감각은 어디에서 얻은 것인지,
그것은 내 꿈이었던가, 사람들 꿈을 대신 꾸고 받은 것인가 헷갈립니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귀여움으로 세상에 나서 귀중함에 둘러싸여 살아갔으면 합니다.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 10:6
사도를 파견하는 문장입니다. 사도가 되는 자격입니다. 보내고 떠나는 자리에서 맺는 약속입니다.
어느 아이가 ´소명´에 대해서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소명도 직업인가요?
직업입니다.
하지만 고르는 직업이 아닙니다. 급여를 고르고 근무 환경과 근무 일수, 복지 혜택, 장래성, 사회적 지위와 시선, 그리고 또.
그렇게 골고루 따지듯이 갖는 직업이 아닙니다.
소명은 ´파견되고´ ´보내어지는´ 데에서 얻는 감각입니다.
그 감각을 무엇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게 보수가 됩니다.
그것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해지는 것이 소명입니다.
태어나는 일,
누구나 해당되는 그 일은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스로´ 자기가 필요해서 아니면 알아서 태어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파견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도입니다.
죽음 또한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보내지는 일입니다. 파견되는 일입니다. 그때에도 소명은 주어질 것입니다.
저는 자살을 편들지 않지만 그것을 위로합니다.
위로할 방법이 없는 것을 위로하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위로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제대로 ´보낼 수 있는´ 다시 그들을 ´파견하고´ 싶은 마음은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그게 ´길 잃은 양들´을 바라보는 목자입니다.
가라,
그 말이 하고 싶습니다.
가는 것을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습니다.
손도 흔들어 주고 눈물도 좀 글썽이면서 웃었으면 합니다.
저도 여기 이렇게 서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