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밥상머리 16

어떻게 같냐

by 강물처럼

"엄마, 밥도둑 청국장 맛이 아냐?"

용케도 산이는 잘 안다.

맛과 냄새를 구별해 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때로는 그것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 언제든 이야기해 주려던 참이었다.

내가 라면 하나를 끓여서 내놓아도 냄새부터 맡아보는 아이다.

그것이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예민하다는 것은 그래서 불편한 면도 있다.

나 또한 산이에 대해 놓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하는 것이 결코 음식을 비판하려는 동작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미리 차단했다.

내가 내렸던 가장 무지막지했던 차단막은 '먹기 싫으면 먹지 마.' 같은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산이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눈물이 날 만한 일이었다.

이런 기회에 미안했다는 말 하나를 툭 남겨놓기로 한다.

웃어라, 그리고 이해해라.

아빠도 직선으로만 배우고 그렇게 살았던 시간이 길었던 탓이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또 사람 아니겠는가.

"그렇지? 할머니가 담근 청국장은 다 먹고 없어.

다른 집에서 가져온 거야. "

나는 왜 저렇게 부드러운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산이와 강이는 아빠보다 엄마한테 말을 많이 걸고 부탁도 실컷 하는 것 같다.

나는 '왜?'를 먼저 따지지만 아이들 엄마는 '그렇지?' 라며 공감을 표시하고 다음 말을 잇는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이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면서도 또 그 길을 걷는다.

안타까운 중생이다.

그러니 너희가 아빠를 널리 이해하는 것에 기대를 걸어볼밖에.

문제를 깨뜨려 해체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녹여내어 내 살과 같이 사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해라는 것은 그런 차원일 것이다.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겨놓고 거기에서 지혜를 얻어 쓸 줄 안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이해'가 되었단 뜻이겠지. 마치 콩이 청국장이 되는 것처럼 말이야.



"같은 청국장으로 요리를 하더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잖아.

엄마가 늘 같은 엄마일 수 있을까?"

무슨 소리?

산이는 냄새 맡던 코를 들어 나를 흘려본다.

"3일 전의 엄마가 오늘 아침밥을 하는 엄마하고 어떻게 같냐?

엄마라는 이름만 같지, 모두 달라졌을 걸?"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침 밥상이 심오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 나는 내 스타일대로 직진을 한다.

무슨 소리? 하던 산이의 표정이 누그러지면서 한 마디 내뱉는다.

"그러네!"

그러면서 저도 하나를 발견해 낸다.

"내가 바뀌었을 수도 있네?"

나도 거기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허를 찔렸다는 투로 반응해준다.

"그렇지...."

나는 맛을 잘 모른다.

아니 내가 먹고 살아온 세월은 그런 것을 묻고 따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것들, 나를 형성하는 것들이 직선적이라는 것을 슬그머니 깨닫는 날들이 있다.

바람이 부는 언덕이나 노을빛이 길게 퍼지는 서해의 하늘이 나에게 일러주는 것들이 있다.

그 자연스러운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것들이 깨알같이 만져진다.

나를 지나는 내가 느껴지고 그것을 알아보는 내가 또 보이는 순간이 있다.

바람 같은 세월의 얼굴을 문득 알아본 듯한 찰나.

바뀌어도 다 바뀐 게 아닌 바뀌었어도 그대로인 듯한 즐거운 착각이 한몫하는 내 나이, 오십 살.

그런 것이야말로 '변화'라고 불려 마땅하다는 생각, 맛이 좋든 싫든 맛은 있었지 않았느냐 내 짧은 항변.

씹는가 하면 삼키고 일어나 학교에 가는 아이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자리를 지키며 청국장을 마저 먹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