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사는 곳에 애정을 갖습니다.
전주全州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말 하자면 고향입니다.
많은 곳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그곳이 어디든 항상 반가운 마음으로 여행을 합니다.
남도의 섬에 들를 때에는 시인처럼, 경상도 어디 주왕산 근처에서는 소설가처럼, 서울 근교에서는 일간지 사설이라도 쓰는 사람처럼, 제주도에 가서는 시나리오 작가처럼, 걷습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녀 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는 늘 따라다닙니다.
전주는 뭐랄까요?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당신이 한 일 년 정도 살아봤으면 좋겠다 싶은 곳입니다.
사람들이 잘 아는 안도현 시인도 여기 전주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벚나무는 건달같이』를 함께 외우고 싶습니다.
벚나무는 건달같이 / 안도현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 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그거 아시나요?
전주 군산 가는 도로를 전군 도로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거.
이제는 번영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는 그 길이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 신작로였다는 것을요?
일제 강점기에 호남의 쌀을 수탈해가기 위해 근 40Km 가까운 도로를 만들었답니다.
그 길에 벚나무가 심어져 벚꽃 백 리 길이 된 것이지요.
변변한 공원 하나 없던 시절에 그 꽃길을 달리는 일은 하루 노동의 보람이기도 했고, 가난한 연인들의 데이트였으며,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피었다가 쉬이 져버린 젊은 날의 회한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전주에 사는 나는 이 길을 아낍니다.
이 길을 지나면서 사계절을 맞습니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옆에서 지켜보며 계절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건네받는 길입니다.
비밀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혼자서만 알고 가끔 꺼내보는 사진첩 같은 풍경입니다.
전군 도로를 따라가다 강변에 접어드세요.
만경강이 부채처럼 펼쳐진 곳에 서면 아마 가던 길을 잊고 한동안 멈춰 숨을 고르고 싶어 질 겁니다.
조용해지고 싶어 지는...
아니 누군가가 많이 생각날 겁니다. 거기는 그런 길입니다.
그런 날, 시절이 벚꽃 화창한 봄날이면 더욱 근사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도 안도현 시인의 이 시를 꺼내 되뇌어 보세요.
당신은 시인보다 더 시인詩人이 되어 먼 곳으로, 다시없는 표정으로 삶을 사랑하고 싶어 질 테니까요. 그윽한 웃음이 번질 것이니까요.
여자는 꽃그늘 아래 있습니다.
사내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저, 꽃이 피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꽃길을 지나갔습니다.
뒤에 남은 여자는 발아래 분분히 날리는 꽃잎들 사이에 가만 섰습니다.
차마, 걸음을 옮기지도 못합니다.
꽃을 떨구면서 나무들은 그들대로 생채기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사내는 벌써 보이지 않고 여자는, 여자는 아무래도 그렇게 오래 서있을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