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이 영화의 목표가 뭐야?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묻더니 엔딩 크레디트를 눈으로 좇고 있던 내게 똑같은 말로 묻는다.
5학년 여자 아이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 이 영화는 한국 사람이 쓴 미국 스토리여서 조금 낯설겠다.
11시가 넘었다. 밖은 별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자자, 토요일 밤은 이제 막을 내리고 훗날이 되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기로 하자.
영화, 미나리는 창고를 다 태워놓는다.
거기에서 윤여정은 몸을 절반쯤 쓰지 못한 채 그리고 의식도 그만큼 희미해져서 눈물을 짓는다.
불기와 물기가 모두 반지르르했다.
미나리는 우리가 먹는 미나리, 그 미나리를 가져다 영화로 만들었다.
미나리로 밥을 해 먹거나 그것을 팔기라도 하면서 사람들하고 이렇게나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어요,라고 설명하는 것이 우리식의 우리에게 익숙한 플롯인데 거기 나오는 미나리는 이름만 미나리였지, 야생화 같았다. 그늘진 곳에 자리 잡고 핀 것이 고창 선운사 가는 길에 봤던 상사화 무리 같았다. 적 赤을 녹 綠으로 바꾸기만 하면.
그러니까 거기 나오는 미나리는 우리가 흔히 먹는 그런 미나리가 아니라 산미나리, 회향이라고 하는 그 미나리였다.
향신료로도 쓰인다는 말을 듣고 보니 미나리 무침을 오래 씹으면서 입속에 돌던 향이 떠오른다. 1월에서 2월 사이에 불어오는 찬 바람과 따뜻한 바람이 엉겨 붙어서 힘을 겨룰 때 떨어져 나오는 기운이 땅에 머물면서 키워내는 향 香.
미안하지만 영화 속 미나리는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동경 憧憬하고 싶어도 원형 原型을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숙함이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민'을 잘 그려냈던 거 아니었던가 싶은 영화였다. 그래서 딸아이는 손에 잡히지 않던 그 '목표'라는 것이 끝내 궁금했을 것이다. 여기는 직선의 효용이 뿌리 깊은 대한민국이다. 그러니까 거기 나오는 아빠는 그쪽보다는 이쪽에 가까운 캐릭터, 엄마와 딸은 그쪽에 사는 사람들처럼, 심장이 아픈 손자와 할머니는 미나리처럼 스트롱하거나 원더풀한 쪽이 되고 싶은 인물들이었다. 작가는 그 모습들을 미나리로 그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중간쯤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창 窓을 사이에 두고 면회하는 그런 면회 있잖은가. 그리스 로마 신화가 버무려지지 않으면 영어권에서 먹혀들지 않는 판타지나 성경의 어떤 대목이 인용될 것 같은 장면 없이는 스토리도 없는 그런 세계에 무방비로 초대된 기분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것은 혹평 酷評인가?
윤여정 씨의 연기는 다른 곳에서 더 상을 받을 만하다. 아카데미는 희망이면서 우연이고 어쩌면 입김도 있을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도 같이 떠올렸다. 그래도 언더풀 그녀의 라이프!
딸아이가 궁금해했던 영화의 '목표'라는 말을 적절하게 바꾸면 영화의 '메시지'일 것이다.
목표와 메시지는 어떻게 다르고 어디쯤에서 같은 말일까?
주제라는 말을 꺼내놓지 않으니까 같은 공간에서 빙빙 돌면서도 서로를 못 알아보는 우연의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다.
말이라는 것은 그만큼 정교하지 못하고 정교하지 못한 만큼 아우라를 간직하고 있음이다. 언어는 신성 神性을 간직했다. 그것으로 사람도 살리고 불도 내고 화해도 하면서 또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동쪽 하늘에 반짝하고 나타나는 새벽별을 신성 晨星이라고 부르는데 언어는 꼭 거기에 알맞은 조화로운 물건이다. 말을 떠난 언어를 그대는 말해본 적 있는가. 그것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전달됐고 그때 어떤 어떤 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던가? 꿈틀거리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상대는 누구였던가?
'이민'의 신산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C, 관계나 자아를 비롯한 갈등과 해소, 감정의 변화를 스토리에 담고자 했다면 그것도 C,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나에게 없던 것, 처음에 말했던 낯선 주제 의식이다. 우리는 가만 두지 않거든. 어떤 식으로든 이거다 싶으면 앞에 내세워서 그것으로 승부를 거는 막돼먹은 성급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습성이니까. 꽂히면 그것으로 끝이니까. 그런 점에서 미나리는 '불과 물'을 대비하는 철학적 시도가 신선했다. 그것을 아우르는 식물, 미나리와 미나리를 닮고자 하는 할머니, 미나리를 닮아야 하는 아빠와 엄마, 그러고 보니 내내 문제가 하나 없었던 큰 딸이 미나리였는지도.
- 아빠, 미나리의 목표는 뭐야?
어서 자라, 영화가 꼭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거든. 잠을 자다가 그 목표가 떠오르면 저기 나오는 꼬마처럼 이것은 꿈이다! 그러면서 정확히 따져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지?
어디에 내놓고 볼 비평이라면 꽤나 은근하게 졸여가며 끓여내는 조청 같은 맛이 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나저나 엘리사벳이 생각났다.
70년대에 미국에 이민을 와 집에서는 엄격한 한국식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며 백만 불짜리 미소로 짓던 모습이 여전히 기억났다. 무슨 말이든 오래 해보고 싶었다는 것만 남아서 술안주도 되지 못하는 옛 추억이 미나리 때문에 소환되었다. 정원이 화려했던 박물관에서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며 그녀가 했던 말이 영어였던가 한국어였던가. 부드러운 조화를 나는 그때 봤었다. 합리적이면서도 논리 정연하고 그러면서 배려하는 '이민자'가 아닌 '근사한 자'.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 서른 해가 가까이 지나가고 있어도.
Thank you for inviting me this wonderful show, Min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