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10

아침에,

by 강물처럼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들었습니다.


생선 장사가 생선 장사에게 바가지 쓰는 일은 없고 밥집 하는 사람은 어느 밥집이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지 대번에 느낍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 잘 읽히고 연기 잘하는 사람들도 서로의 모습이 잘 보일 것입니다.


링 위에서 싸워야 하는 파이터들마저 직감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 시합은 순조롭겠구나, 아니면 고전하겠구나.


그래서 같은 부류에 속한다는 것은 가깝고 친밀하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칡나무와 등나무는 세상에서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닙니다. 그 둘은 오랜 세월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진 사이입니다.


그렇게 가까워지고 한 지붕 아래 뿌리를 내렸지만 ´갈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말기 암에 걸린 의사가 자기를 치료하는 의사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도 폴 칼라니티의 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인간성이나 도덕성까지 도마 위에 올릴 것 같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주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 도와줄 때가 있고 알고서도 모르는 척할 때가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말이 있습니다.


´ 속이 보인다´


´ 속을 안다´



´ 속이 보이면´ 얄밉고 그 정도가 심하면 괘씸하다가 어느 선에서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따지든지 포기하든지.


하지만 ´ 속을 알면´ 어쩐지 이해하고자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이 전개됩니다. 내 안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생기는 듯합니다. 과연 그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싶습니다.


보이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말 그대로 그것이 그것인데 말입니다.


하나는 ´감춘다´는 감각이 숨어 있고 다른 하나는 ´드러난다´는 형식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사람은 낯선 것을 대하면 ´틀렸다´, ´나쁘다´ 또는 ´위험하다´고 인식을 합니다.


대신 익숙한 것에는 ´맞다´, ´옳다´ 그리고 ´안전하다´는 사인을 냅니다.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익숙한 상황에서 더 큰 위험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낯선 곳에서는 조심하지만 익숙하면 방심하는 것입니다.


사고는 방심에서 시작된다고 누누이 새겨 들었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속을 들켜버린 기분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싶습니다. 제물을 바칠 줄은 아는데 자비라, 자비...


자비 慈悲는 너무 먼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자비는 자비 自費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자기 비용으로 무슨 일이든 해결하고 사는 것이 기본이 됐으며 그것도 하지 못하면 기본 이하가 됐습니다.


지나가다가 코로나 백신을 들고 아프리카나 인도, 세상에서 떨어진 세상에 찾아가는 의료진이 나오는 광고를 봤습니다.


자비 自備 - 스스로 갖춤-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백신을 마련해 주는 그 모습이 자비스러웠습니다.



​하루 중에서 어느 순간, 자비롭다고 느끼시는지요.

그렇게 느꼈던 그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이렇게 말하는 제 속은 보이는 것인지요, 알 것 같은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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