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산에 갔다. 설거지도 그대로 두고 식구들이 집을 나서기 전에 먼저 나왔다. 2시 조금 넘어서 깬 탓에 살짝 어지러웠는데 그대로 잠을 자기에는 정신이 명료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궁금했었다. 그게 얼마큼 좋을까?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거칠지 않은 산길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비닐봉지에 넣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틀고 바지를 걷고 마스크도 벗고 한 손으로는 스틱을 디뎌가며 천천히, 새롭게 걸었다. 발바닥으로 모든 것이 집중된다. 심지어 앞만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내 두 눈도 엄지발가락보다 10센티 앞을 살피는 데 열심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것을 밟을까 온몸의 감각이 집중했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감이 우리가 평소에 느끼던 그것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말하자면 좋은 긴장감, 긍정적 긴장감이 내 등 쪽 아래에서 형성되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알맞게 땀이 옷에 배어가는 것을 걸음과 걸음 사이에서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많지 않은 날이었지만 소슬한, 나무 이파리를 흔들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시원했다. 아주 다른 속도였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이동이다. 움직임이다.
사람이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빨리 걸을 수도 있겠지만 내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일었다. 차근차근 속삭이는데 호기심은 더욱 왕성해지는 이야기처럼 맨발로 걷는 산길에서 나는 바람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그동안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을 한 번씩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그러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럴만했다. 몇십 년을 맨발로 산길을 걷고 있다는 분의 우물 속 같이 깊고 청량한 경험을 한 모금 따라 마신 기분이었다.
지나간 것들 후회하지 않기.
아쉬운 것만큼 앞으로 잘하면서 살기.
그러면 됐고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어서 다행으로 알기.
단순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첫 기분을 또박또박 읊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좋아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열없다. 그렇지만 그게 나다. 그리고 그게 좋다.
집에 와서 찬물을 틀어가며 열을 식혀줬다. 모처럼 부지런히 발바닥을 비누칠하며 만져줬다. 그런데 그새 물이 든 구석도 있다. 이건 오랜 세월 산길에서 눅진해진 자연이 만든 염료다. 나는 그것으로 생애 처음 문신을 했다. 그것도 발바닥에 말이다.
' 차카게 살자.'
라는 근사한 문신을 발바닥에 완성시키는 날까지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