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아프다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앞질렀다는 소식에
아파트 숲 속 나무들이 아프다.
정년 뒤 방콕 신세가 된 팽나무가 아프고
늦여름까지 꽃단장하던 배롱나무도 아프다.
둘이 한 몸 이루었던 연리지 나무까지
시름시름 성격차이로 갈라서기를 꿈꾼다니
"황혼이혼 무료상담 환영!"
현수막 허리에 걸고 서있는 늙은 은행나무가
지나는 사람 머리 위에 냅다 똥 냄새를 뿌려놓는다.
그러지 마, 사랑도 아프다.
세상에 없던 말이 새로 생기고 그와 반대로 있던 말도 사라진다.
아마 황혼이혼이란 말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황혼이혼黃昏離婚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숙년이혼熟年離婚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한다.
어느 쪽이 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쓸쓸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황혼이란 말이 나왔으니 좀 더 소개를 할까 싶다.
일본어의 특징 중의 하나는 '요미카타 読み方'라고 하는 읽는 법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우리는 한자 一을 써놓고 [ 한 : 일] 이렇게 읽지만 일본에서는 [이치, 하나]라고도 읽고 [하지메, 처음]으로 읽거나 [니노마에, 2의 앞]등으로 읽는 방법이 다양하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황혼이란 이런 모습이다.
황혼 녘을 한자로 쓰면 황혼시黃昏時가 된다.
이것을 일본어로 읽으면 [다소가레토키]가 된다.
그런데 같은 소리로 이렇게도 쓸 수 있다.
誰そ彼時,
해 질 녘에는 사물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래 だれ誰는 누구], [카레 かれ彼는 그, 그 사람], [토끼는 とき時 때, 시간] 말하자면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시기를 황혼 녘이라고 이름 지었던 것이다.
조금은 말의 운치를 살린 맛도 있지만 설명이 그윽해서 좋다.
'거기 있는 그는 누구인지?'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분간이 되지 않으니까 그게 누구인지? 무엇인지? 다시 물어보게 되는 시간대가 해가 지고 황혼이 지는 때인 것이다.
황혼黃昏이란 말은 그렇게 다시 새롭게 물어봐야 하는 시기임을 일러주는 말인 것 같아서 좋다.
익숙한 것들에게 던지는 물음,
거기 있는 그대는 누구이며, 내가 알던 그대인지요? 라며 서로 성찰하는 시간, 황혼.
볼 짱 다 봤으니까,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이제 두려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으니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아니 해방이다.
이런 식으로는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황혼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긴 낮을 지나온 것들이 영광처럼 맞이해야 하는 것이 땅거미다.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할 시간이다.
함께 오랜 시간을 걸어온 두 사람은 안개 퍼지듯이 내려앉는 땅거미를 두고 먼저 떠나지 않는다.
저녁 어스름을 혼자서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은 무서운 슬픔이란 것을 누구나 알지 않는가?
그러니 황혼이란 이름을 달고 헤어지지는 말자.
모든 좋았던 것들이 힘없이 그 빛을 잃고 사위어만 가는 그대나 나는 가엾을 뿐이다.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는 여름날에는 어느 나그네의 마지막 외침을 보는 것 같다.
사람이란 글자와 사랑이란 글자는 왜 그렇게도 많은 부분이 닮았는지 시를 읽으면서 또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