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밥상 / 이용한

시의,

by 강물처럼


이상한 밥상


어느 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닥달그닥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 10년 전보다 20년은 더

젊어진 어머니는 콩나물 무치던 손으로 이제는

늙어버린 내 손을 밥상 앞으로 잡아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밖에서 또 놀다가 온 거냐?

젊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아내며 늙은 내가

밥을 먹는다 어머닌 참,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이놈 자식이, 어머니의

싱싱한 손이 낡은 내 엉덩이를 후려친다

너는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어머니,

난 이미 어머니만큼 살았고,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가 또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밥 흘리지 말랬더니,

그거 다 저승 가서 먹어야 해! 어느 날부턴가

다 낡은 나에게 싱싱한 어머니는 죽지도 않는다.

- 이용한 시집 <안녕, 후두둑 씨>



초등 5학년은 분수의 곱셈을 한참 배우고 있다. 대분수를 가분수로 고치고 약분을 하면서 수학 문제를 푼다.

12살이면 사리事理를 꿰뚫지는 못해도 기본적인 판단은 가능하다.

깨우지 않아도 제시간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채비를 마치고, 밥상에 앉아서 쓸데없이 투정하는 일 없고,

어디서든 사람들에게 정성을 보이는 일,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세상을 행복하게 여기는 5학년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아들, 산이는 유난히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9살 딸을 옆에 대놓고 비교를 해보면 눈에 띄게 두드러져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다.

산이는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이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저 혼자 수학을 선행先行하고 있으니 내겐 고마운 아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에게 '약점'이 하나 있다.

제 엄마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산이 엄마는 산이를 나이 마흔에 낳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용기'와 '희생'은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야 아이가 뭘 모르니까 괜찮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엊그제 학교 '공개수업'에 다니러 가면서 일부러 '밝은 색' 옷을 사 입고 나갔다고 산이 엄마가 그랬다.

산이는 엄마가 이제 '마흔'이 되었다고 여긴다.

작년에는 그러니까 '서른아홉'이었다.

산이에게 '마흔'인 엄마가 내게는 '쉰', 써놓고 보니 우연처럼 웃음이 난다.

50이라고 써야 할까 보다.

쉰이라고 하니 사람마저 그래 보여서 안 되겠다.

산이 엄마가 오십은 넘었지만 사람이 '쉰'것은 아니니까.

내가 기억하기로 산이 엄마는 산이가 엄마 나이를 물어왔던 날에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엄마는 서른네 살이야.'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5학년 산이가 아직 그걸 모를까?

알 것도 같은데, 산이는 애정을 듬뿍 담은 눈과 손으로 엄마 곁을 떨어지지 않고 지킨다.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엄마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먼저 챙기는 12살 사내아이는 엄마를 자꾸 젊게 만든다.

그 엄마가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어도 그래서 할머니가 되어도 여전히 '엄마, 엄마' 그렇게 불릴 것이다.

'마흔'

마흔 먹은 엄마와 5학년 된 아들로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것 같다. 둘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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