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용인가 봐
맨살에 부딪히는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싶더니 금방 차가워졌다.
여름의 기억이 남아서인지 거실을 오가는 차림들이 아직은 얇고 연하다.
누군가 한 사람 입에서 춥다는 말이 나오길 서로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고 은근히 미루는 것도 같다.
그렇더라도 마지막 타종소리는 놓치지 않고 몸을 일으켜 가을 속을 거닐어보길.
가을에는 볼거리도 많지만 먹거리도 풍부하다.
과일이며 생선이며 쌀까지 무엇이나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듯한 시절이다.
가을 전어는 따로 말할 것도 없고 요즘 갑오징어가 그렇게 잘 잡힌다고 들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사진에는 살 오른 고등어며 빛깔 좋은 갈치도 단골이다.
산이는 꽃게요리를 좋아한다.
된장을 살짝 풀어서 끓이는 꽃게탕은 국물도 일품이다.
가을에는 호박이 또 맛이 오를 때로 올라서 보기 좋게 가지런히 썬 호박을 넣은 꽃게탕이 아침에 등장했다.
우리 집은 아침밥이 중요하다.
함께 어울려 식사하는 유일한 식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고 저녁에는 사정에 따라 그때마다 다르게 전개되고 만다.
우리만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범한 가정이란 말이 갖는 분위기가 나 어릴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저녁이 바빠진 사회는 가족끼리의 오붓한 저녁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생각해 볼 문제다.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어른들이 부지불식간에 '바빠서'라는 요리를 아이들에게 열심히 먹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혼자서 아니면 딸아이와 둘이서 차려 먹는 저녁 밥상에서 가끔 드는 생각이다.
'바쁘니까' 그렇게 말하면 왜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는지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 한 번쯤 해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이든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을 때는 늦는다.
왠지 무거워 보이는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오늘 아침 일이다.
그래, 그렇게 먹음직스러운 꽃게탕이 식탁에 올라왔고 닭다리를 잡듯이 탁 한 마리 잡고 훑었다.
없다.
가을 꽃게는 원래 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그만한 살림에 살 없는 것들만 사 왔는가 싶어 살짝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래도 가장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니까 먹는 일에 불평을 하지 않는 편이다.
비록 살이 없어도 살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고 '껍질이 단단하네'라고 돌려 말하고 꽃게 속을 살폈다.
한두 달 전부터 엄마하고 자리를 바꿔 앉은 산이가 내 옆에서 말을 거든다.
"육수용인가 봐."
6학년짜리가 뭘 안다고 그런다.
식구들 중에서 꽃게를 가장 좋아하는 녀석이라, 나보다 더 허전했을 텐데 꽃게를 잡고 있는 작은 손이 귀여웠다.
맞은편, 3학년 여학생 강이가 가만있을 리 없다.
방점을 찍는다.
"한 3일 다이어트한 거 같아!"
아, 우스웠다.
아이들이 크면 부모를 웃길 줄 아는구나.
세월은 사람을 늙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게도 한다.
그 꽃게는 바다에 있을 때 헤엄은 무지 잘 쳤겠다.
가벼워야 잘 날고, 잘 달리고, 잘 헤엄치겠지?
산이와 강이는 각자 서로 자기 식대로 내 말을 해석할 것이다.
한 생각이 떠올라서 같이 적어두기로 한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다.
바람도 많다.
집집마다 그리고 죽은 다음 무덤에도 어디든지 사람이 지나온 자리는 돌이 담을 이루고 산다.
사람 손으로 쌓아 올린 그것들이 잦은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고 세월을 버티는 이유는 하나다.
돌담에는 구멍이 많다.
숭숭 뚫린 그 틈으로 바람이 황소여도 지나가고 봄바람이어도 지나간다.
잘 지나가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지나지 못하게 막아놓고 있으면 무너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가볍고 구멍 뚫린 것들이 세상을 살아내고 살려내는 회생법을 가르친다.
살 없는 빈 꽃게는 벌써 다 잊었다.
아침에 먹은 밥은 기다리기만 하면 살이 되고 피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가 꽃게랑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무엇이 될까.
세월이 다시 더 많이 지나서 그때 살이 많은 꽃게를 먹으면서 나에게 들려줬으면 좋겠다.
너희들 사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무엇을 먹고살고 있는지.
그때 부는 바람은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