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밥상머리 13

살아있는 현재에

by 강물처럼

2010년 서울 G 20 폐막 기자회견에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친화력 있는 제스처로 호의인 듯 아닌 듯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때까지 분위기 좋게 웅성거리던 회견장이 하나의 점으로 집중되었다.

매의 눈으로 먹잇감을 찾고 있던 기자들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알다시피 기자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란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애인을 놓치는 일 같은 것이다.

지금 잡지 않으면 영영 후회하면서 살아야 되는 그런 일이다.

더군다나 미국 대통령이 무대에 오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믿기지 않는 순간이 이어졌다.

아무도 손을 들고 일어서지 않았고 사람들은 사람들을 둘러봤으며 그러는 사이에 어색함이 짙어졌다.

박자를 놓친 가수처럼 오바마 대통령은 살짝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끝내 한국 기자들은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질문할 필요가 없었던가 아니면 질문할 용기가 없었던가.

개인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이 하나 있다.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는 모두 '칼' 같은 것이다.

언제 쓸지 모를 그때를 위해서 연마하고 때때로 닦아놓지 않으면 날이 서지 않는 칼.

칼에는 저마다 기운이 서려있는데 어떤 요리는 그 칼맛으로 먹는다.

깎아내고 도려내면서 베고 자르고 찌르는 동작 하나하나가 문장을 만들어내는 언어와 상통한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요리사에게 칼은 고르고 골라야 할 배필이다.

문장을 쓰고자 하는 나는 순간을 날이 선 칼처럼 바라볼 때가 있다.

탁탁 쳐내고 태 態를 갖춰가는 것이 마치 칼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칼을 휘둘러보고 칼질을 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서 품어지고 머리로 조합을 이루었어도 말로 되고서야 비로소 언어가 되는 것이다.

칼은 휘두를수록 강해지는 것이고 언어는 쏟아놓을수록 틀이 완성된다.

내가 언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녹이 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느림과 게으름은 다른 차원의 말이다.

느리게 가는 거북이를 게으르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다.

삶의 곳곳에 적용시켜볼 만한 경구다.

나는 유대인들의 그 말을 믿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 말.

가르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수정되었으며 그때마다 어떤 황홀감에 빠졌었는지 낱낱이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해 줬던 이들이야말로 내 스승이었다.

그런 면에서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시는 고마운 것이 헤아리기 어렵다.

산이 강이와 걸었던 모든 길에서 나는 떠들었다.

신나게 말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쑥쑥 자라는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실컷 웃어버렸다.

자기의 성장을 세포로 느끼는 경험이란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이른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 숲 속의 맑은 공기 속을 거닐다 보면 알아차리는 것들이 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환호하고 있구나.

진짜로 좋은 것들은 속에서부터 알아본다.

말하는 것은 상대를 가르치는 행위일 수도 있으며 내가 나를 깨우치는 동작으로도 작용한다.

그러니까 '말해야 한다.'

아이들과 아침밥을 먹을 때에는 '더욱' 말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이야기를 꺼내놓기를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많이 심심하게 지날 것만 같다.

물론 아이들은 언제나 아침은 굼뜨게 움직인다.

밥 먹고 학교 가기에도 바쁘다.

일상은 그렇게 사람을 쫓아낸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못 하면 그거 좀 비굴하지 않나 싶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항변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자기를 '말하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끝에는 거의 부탁조가 되었다.

너희들이 너희 생각을 말하고 마음을 말해주면 우리는 즐겁고 고맙겠다고.

누군가 말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가만 안 둬!'

옛날부터 임금이든 누구든 나쁜 사람들은 사람들이 말을 못 하게 했다고 말해줬다.

자유는 말에서부터다.

그렇게 말하고부터 사람은 진짜 자유를 실현시킬 수 있었다.

말하라, 표현하라.

살아있는 현재를 죽어가게 내버려 두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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