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없으면서 있습니다.
세상에는 있으면서 보이지 않는 것과 없는데도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기나 냄새, 바람 같은 것들이 앞에 것이라면 행복이나 우정, 사랑 같은 것이 뒤의 것이 됩니다.
밖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안을 들여다보는 눈도 있습니다.
사람의 일은 오묘합니다.
누구라서 사람을 이처럼 특별하게 여겼을까 싶기도 합니다.
특별히 아름다운 것들을 살펴보는 안목을 심미안 審美眼이라고 합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누구나 비슷한 대답을 합니다.
´행복하려고´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홍시는 홍시 맛이라도 나지만 행복은 도대체 어떤 맛인지요.
행복을 맛보신 분들이라면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이 간지러울 것도 같습니다.
뭐라고 한마디 써주긴 해야겠는데 그것을 뭐라고 할지 잘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가슴속에 차오르는 어떤 것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만의 행복, 자기가 알고 있는 행복 레시피 아닌가 싶습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마태오 16:17
자면서 더우니까 깨고, 하루 일을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따라 마신 탓에 화장실도 들락거리느라 깨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무겁게 일어나서 평소에 작업하던 내 컴퓨터로 한참을 써 내려가다가 그만 화면이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오늘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작은방으로 건너와 다른 컴퓨터를 켜고 처음부터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저는 왜 행복할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습관이란 주제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줄 생각입니다.
말하고 싶다기보다 저도 그렇습니다. 차오르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좋은 것들이 옮겨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어째서 불행하다고 여기느냐 물으면 대부분 놓치는 부분이 한 곳 있다고 합니다.
불행한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달랐다고 합니다.
또한 행복한 사람에게 왜 행복하냐고 물으면 공통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한 마디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빠트리는 것과 행복한 사람들이 꼭 챙기는 말은 서로 같은 말이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바로 ´지금´이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지금을 바라보지 않고 과거에 매달리거나 앞날을 걱정하느라 애가 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은 왜 행복한지 자기도 모르면서 지금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밥이 맛있잖아요. 그런 식의 답이 가능한 범위의 마음 상태에서 뛰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좋은 일입니다.
일기도 그렇고 메모도 그렇고 편지는 더욱 좋습니다.
지금을 가장 흔연 欣然히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솜씨는 나중의 일입니다. 자기 밥을 자기가 챙기는데 솜씨 없다고 그만두면 언제 누가 밥을 챙길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내 발로 가본 곳이 가본 것이고 내 눈으로 본 것이 본 것이며 내가 맛본 것이 맛있습니다.
내가 쓴 것이 가장 나다운 글입니다.
7시가 넘어갔습니다.
어떤 분인가는 궁금해하실 겁니다.
´어? 무슨 일 있나? ´
아마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가운데 보이지 않으면서 멀리, 오래 전해져 오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덕분에 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꼭 덧붙이자면 큰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느낌입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알고 있다면 세월은 벗이 됩니다.
그 느낌이 있습니다.
지금 좀 늦었으니까 다음에 더 이야기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