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일정 부분 섬세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둔감한 영역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쪽을 볕에 내놓고 말리느냐에 따라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는 듯싶습니다.
내가 놓인 상황과 내가 잘하는 부분이 서로 맞닿으면 일은 쉽게 풀리기도 하지만 하필 내가 영 자신 없어하는 부분에 화살이 날아와 꽂히면 당황스럽다 못해 어쩔 줄 모릅니다. 그것이 한 번 두 번 쌓이다 보면 무늬가 생겨나고 무늬는 자리를 잡고서 삶을 통째로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상황이 그려나가는 그림에 내가 들어가서 하나의 소재로 자리 잡습니다. 그것을 세월이라고 하기도 하고 자국이나 냄새, 또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영화, ´국제시장´을 어제저녁 봤습니다.
열어놓은 창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저녁 바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봤던, 다 알고 있는 스토리를 5분만, 5분만 그러면서 계속 이어 붙이기 하듯 봤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에도 눈물이 나온다는 것이 우스웠습니다.
왜 우리는 ´이산가족 찾기´ 그 장면만 보면 가슴이 뭉클하게 오므라들고 긴해질까요. 내가 이산한 것도 아닌데...
´누가 이 사람을´ 그 음성이 흘러나오기만 하면 마음은 자동으로 세팅이 되는 듯합니다. 가라앉고 슬퍼할 줄 아는 세팅.
공감할 줄 알고 한 번 더 들어도 좋다, 슬픈 사람이 참 많다 싶어서 차분해지는 세팅.
영화에서 두 가지 말이 한 방향으로 달립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랑이 똘똘하게 뭉쳐졌습니다. 사랑은 저렇게 나이를 먹고 세월을 이겨내는구나 싶은 장면이었습니다. 대신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덕수의 아내가 베트남에 가서 돈 벌어 오겠다는 남편을 향해 그럽니다.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고요! ´
베트남에서 몇 번을 죽다 살아난 덕수는 먼 곳에 편지를 부칩니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꼬. ´
영화 마지막에는 그렇게 늙은 덕수와 덕수의 아내가 서로의 손을 잡습니다.
잠에서 일어나 창을 열고 촉촉하게 내리는 빗소리와 그 빗속을 지나 불어오는 바람결을 하나씩 마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자리를 옮겨갑니다.
코로나도 진정될 것입니다.
지금이 지금이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배경도 좋으면서 마음씨까지 착해서 손댈 것이 하나 없는 그런 존재는 아닌 듯합니다.
그것은 예민하면서 섬세하고 민감한, 하나의 맛으로도 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표현하는 존재 같다는 생각에 넉넉해진 기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이쪽, 내일은 다른 쪽, 그렇게 볕을 쬐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볕이 닿지 않은 곳으로는 바람이 불어와 다 마르지 못한 것들을 달래주는 일,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비 오는 날 아침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오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