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몸이 좋지 않은 분들이 가까운 숲길을 많이 거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걸을 수만 있어도´
그 경계선에 놓여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며 마지막 하나 남은 바람 같은 것인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걷지 않습니다.
똑같은 말을 ´볼 수만 있어도´로 바꿔 눈에 가져다 대보면 이렇습니다.
´볼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
플래시 불빛처럼 점점 약해지는 시력으로 무엇을 보고 있느라 바쁜지요.
그와 같은 은유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예전 같지 않은데 우리는 태평합니다.
태평한 것은 그나마 봐줄 만하지만 무심하기까지 합니다.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는 백발 白髮을 막자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세월을 거스를 수 있을까요.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볼 수 있을 때 보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할 것을 챙기면 빗소리가 정겹게 들립니다.
그러니까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은 또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인생을 돌봐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무엇인가 과잉된 것, 혹은 결핍된 것들을 살펴 고르게 다스려주고 토닥여야 다져집니다.
그게 자기 인생에 대한 예의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 말 앞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쓸 수만 있어도´
뇌경색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이제 기도할 줄 모르십니다.
평생 곁에 두고 다니시던 묵주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입니다.
사람도 묵주도 정물 靜物로 돌아가 고요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그 힘이 어쩌면 가장 위대한 힘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 위안이 됩니다.
´기도할 수만 있어도´
많은 이들이 그 마음 하나로 하루를 삽니다.
그 마음마저 다 손에 쥐지 못하고 자꾸 놓치고 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내 손에서 다 빠져나갈 것뿐입니다.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태오 23:19
둘이 걸으면 마음이 깊어지고 여럿이 걸으면 젊어집니다.
혼자 걷는 길에서는 구도자가 됩니다.
무엇보다 좋아집니다.
건강이 좋아지고 세상이 좋아지며 자신이 좋아집니다.
그대, 걸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