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과 헌 것으로 나누어서 보면 명백하게 새것이 긍정적입니다.
헌 것에 새것을 담는 일은 어울리지 않고 부담스럽고 위험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새 포도주는 헌 가죽 부대를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나오는 ´묵은 것´은 의미가 확 와닿지 않습니다.
헌 가죽 부대는 used wineskin, 말 그대로 낡은 것, 이미 사용해서 중고가 된 것입니다.
그에 비해 오래된 포도주는 old wine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습니다.
이 부분을 지날 때마다 - 특히 ´묵은 것´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더욱 - 갸우뚱하며 잠시 생각이 멈추고는 했습니다.
오늘은 살짝 거기가 풀리는 느낌입니다.
´기록´은 그렇습니다.
창작 같은 경우는 일부러 빈 공간을 내어놓고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 모여서 구시렁거릴 수 있는 것까지 궁리하며 설계를 합니다.
기록은 말한 것도 빠지고 혹은 빠뜨리기 십상이어서 앞뒤 이야기의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노래 가사도 생각이 납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두 개의 이야기로 밸런스를 유지하며 마무리를 지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헌 것은 낡은 것이지만 필연적으로 오래된 것들입니다.
낡은 것은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맞지만 오래된 것을 꼭 새것으로 바꿔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된 것은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그러니 쉽지 않습니다. 낡은 것과 오래된 것을 구분하고 나눈다는 것은 함부로 아니면 가볍게 처리될 일이 아닙니다. 누가 그것을 나눌 수 있습니까.
이타적이어야 할 거라고 믿습니다. 순전히 이타적 利他的 계산에서 그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는 익어가는 것이 맞는지요.
밤이나 감처럼 맛이 거기 들기 시작했는지요. 충분히 볕을 쬐었고 바람을 쐬었는지요.
열매가 나무를 대신 내어놓지는 않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고 사람이 그 열매를 땁니다. 잘 익은 것부터 떨어집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일입니다. 모든 과정이 순순하게 이루어집니다. 일회적이며 최종적인 결실 結實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묵어가는 것에는 바람과 햇살의 맛이 담깁니다. 그 맛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이의 선물이었던 나는 다시 누군가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새것의 맛이 나며 묵은 것의 맛도 낼 줄 아는 솜씨로 예수님은 음식을 장만합니다.
그대로 하늘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루카 5:35
그대는 잘 익어가고 있습니다.
하늘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