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45

아침에,

by 강물처럼


비교적 차분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그런 말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저 어렸을 적에 가끔 해주시던 말이었는데 글쎄 그 말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진짜는 진짜라고 떠들지 않잖아. ´


어머니는 배움이 없으셨기에 다른 것들에는 입을 다무시고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한 글자도 저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그러니까 국민학교 1학년 때는 매일 받아쓰기 시험을 봤습니다.


아마 낡, 닭, 옳, 찮, 값, 삯과 같은 글자들이었을 겁니다.


처음 두 개를 틀리고 집에 왔던 날,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맞은 거나 같으니까 틀렸어도 괜찮아."


어머니는 자신이 모르는 것, 자신 없는 것들에게는 무조건 양보하셨습니다.


뒤로 물러섰으며 절대 먼저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성당에 다녔지만 제단 앞에 나와 성경 봉독을 한 적은 없습니다.


집에서는 성경책을 읽으셨지만 사람들 앞에서 글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어제 아침 미사에 앉아있으면서 어떤 분이 독서하시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을 못하고 말았구나.


내가 옆에라도 같이 서 있었다면 한 번쯤 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것들을 법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도덕은 양심의 법이 되기도 하겠지만 사람들 눈치를 보는 일은 또 무슨 법일까 싶습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은 꼭 한 번 성경을 읽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글을 모르거나 눈이 보이지 않거나, 어떤 사정으로 그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근거려서 못하기도 합니다.


안 해봐서 못하기도 합니다.


종교를 말하기 전에 먼저 그런 사람을 살필 줄 아는 것이 사람됨인 듯합니다.


그것이 감동이며 성스러운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서툴게 읽고 잘못 읽고 떨면서 읽으면 귀가 서고 눈이 커지며 가슴이 그분을 향합니다.


응원하면서 듣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듣는 것이 백 번 낫습니다.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과장, 허위 광고문처럼 들려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법에 충실했지만 그런 말은 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어머니가 일체의 타협도 없이 단호했던 것이 꼭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이 없으시고 병석이지만 그 모습은 제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뛰놀다가도 시간이 되면 성당에 가야 한다.


유일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맑은 날, 토요일 아침에 멀리 내다보이는 하늘을 구경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은 그렇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한 주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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