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뽑으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세상은 신기한 곳입니다.
누구 한 사람, 풀잎 하나, 개미 한 마리조차도 스스로 세상에 나온 것이 없으니까요.
그것이 억지는 아니었을 테지만 어떻게 지금 여기에 우리는 머물게 되었을까요.
톡 하고 땅에 떨어진 기분이 영 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나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움직이는데´
나무에게는 별미 같은 세월이 저를 나이 들게 했습니다.
나이가 든 나는 나무를 보며 -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은 같은 성 氏를 가진 사람들처럼 어울립니다. 나이, 나, 나무. -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나무여서 좋겠다. ´
아마 타고난 성품대로 살아지는 것일 겁니다.
나무는 가만히 오래, 그런 말까지도 제 몸에 담고 나무처럼 만들어서 밖에 내놓을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말들이 여전히 조급해하고 안달합니다. 그것들이 세월 위에서 달음박질하느라 바쁜 것을 보면, 내 탓이다 싶어서 겸연쩍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 루카 6:44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WAY 그러면서 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방법이란 말로 전달될 경우에는 더 힘 있는 말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No Way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현명한 Wise ´ 이란 말이 ´방법´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현명한, 그것은 방법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방법은 현명한 것의 구체화였던 것입니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반갑습니다. 아이들에게 OtherWise라는 말을 들려줄 때는 마치 구연동화 한 토막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지긋이 눈을 감고 이야기합니다. OtherWise, 다른 방법,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때, 들어맞지?
그 방법 말고, 그러니까 ´그 외에는´ 어때, 재밌지?
말이 사람을 가르치면서 키웁니다.
나무는 무엇을 배우며 자랄까 궁금합니다.
나무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 하늘과 땅일 텐데 그 사이에는 어떤 언어로 수업이 이뤄질까요.
몰래 그들의 언어를 탐구하거나 베껴서라도 남겨놓고 싶습니다.
내 뒤에 오는 이는 그 말 하나쯤 익혀서 ´시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바람 속을 건너오는 말이라니, 제법 신선하고 근사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루카 6:46
근사하다는 말 근사 近似 하다는 많이 닮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그렇게 닮았을 때 근사해지는지요.
저는 말을 찾아다녀야겠습니다.
바람 같은 말을 찾을 수 없을 것을 알면서 찾아 나서는 저는 조금 근사해져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나무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