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50

아침에,

by 강물처럼

자고 나면 한 계단씩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을 좋아하시는지요.


최백호의 노래가 슬슬 입에서 흥얼거리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누군가 그렇게 깊고 아련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다면 감나무에 감이 다 익을 때까지 그를 생각하며 가을을 헤아릴 것 같습니다. 가을은 깊어갈수록 나보다 상대가 어른거리는 계절입니다. 다른 것들이 쉬 떠나가는 날들이어서 나라도 별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지켜주고 싶은 날들입니다. 아직 볕이 따사로운 것이 김제 들판에서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어라, 잘 여물어라, 생명을 먹이는 푸른 생명들아.



젊었을 때는 4계절만 있었습니다. 그것이 재미있습니다. 나이 들었다는 티를 내고 싶은 것은 아닌데 그게 또 볕이 기울어 가면서 온도와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맛이 있습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여태 몰랐던 다른 계절이 하나씩 도드라지더니 1년 열두 달이 서로 다른 계절인 듯싶습니다. 아마 여기에서 더 세월이 깊어가면 날마다 다른 계절이다고 쓸지도 모릅니다. 지나온 날들이 그렇습니다. 하나하나는 잊혔는데 꼭 두루뭉술하지는 않습니다. 가볍게 끄덕이며 인사를 하면서도 거친 손바닥을 맞잡은 날에는 곰상곰상하게 말도 더 섞어냅니다. 안녕하셨지요, 건강하시지요. 퇴적층 사이사이에는 촉촉한 물기가 어려있습니다. 그것이 시멘트처럼 그 위를 굳게 만들고 층을 만들고 다른 스토리들을 모아 하나의 삶을 이룹니다. 잘 쌓인 것들은 세상에 양분이 되는 이치를 가을볕에서는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그것도 이 계절이 숨기지 못하는 매력입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 루카 7:7



이렇게 좋은 계절에 나 혼자 바다를 보고 길을 걷는 일은 쓸쓸합니다.


세상이 가을이어서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어느 날 겨드랑이 사이로 불쑥 찾아들면 그때 텅 빈 것들이 눈에 밟힙니다.


내 세상을 좋게 만들었던 인연들이 그리워질 것입니다.


나도 건강할 테니 너도 건강해라.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모처럼 안부 인사 전합니다.


익어라, 잘 여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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