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55

아침에,

by 강물처럼

머리를 길렀던 것이 3년쯤 됐습니다.


그동안 재미있었습니다.


왜?라는 물음을 밖에 꺼내놓고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있었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왜 한국 남자들은 모두 머리 모양이 같나요?"



"한국은 집들이 다 똑같아요, 사각형으로 반듯반듯."



30년쯤 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생각에 그저 웃음만 나왔습니다.


왜? 라니. 왜가 어딨어. 다 그러는 거지, 뭐.


너희들이 한국을 몰라서 그래, 한국도 나름대로 좋은 구석이 많다.


대충 그랬을 것입니다. 더 말하면 피곤하기만 할 뿐, 우리에게 개성이란 말은 낯선 말이었습니다.


´개성 個性´ 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날이 기억납니다.


동경 東京에 있는 자그마한 교실이었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었습니다.


개성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보셨는지요. 그리고 얼마나 들어보셨는지요.


그것이 지적받을 일은 아니지만 ´우리네´ 일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말입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머리를 기르는 동안 저는 ´개성´을 몸에 지니고 다닌 기분이었습니다.


달빛에 꽃들을 넌지시 조응 照應 하듯 머리카락 길이를 쉰이라는 나이에 한번 맞춰봤던 거 같습니다.


왜 더 젊어서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리를 더 길렀습니다.


어색한 것을 편안하게 대할 줄 아는 솜씨가 하나 생겼습니다.


안 해본 것도 즐길 줄 알고 싶어졌습니다.


멀리 가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글도 써야겠다는 생각, 걸어야겠다는 생각, 좀처럼 내 것 같지 않았던 그 생각들에 ´내 생각´이란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졌습니다.


머리 하나 기른 것뿐인데, 그렇습니다.



어제는 머리를 잘랐습니다.


정확하게는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말았습니다.


내가 바랐던 것은 아닌데 ´대충´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대로 또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개성´이니까요.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지만 개성이 그 가슴에서 솟아날 거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니까요.


저는 그런 말이 여전히 되고자 합니다.


´너 개성 있다.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루카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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