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5코스 첫째 날
2021, 10월에,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비가 내리는 것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내리는 비는 얼마나 너그러운가.
월요일 저녁부터 내리던 가을비가 화요일 내내 거리를 적셨다. 곧 단풍이 들 것이다.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생각만 했다. 시시각각 공기가 차가운 표정을 지어가며 빗속에서 맴을 돌았다. 절대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여기 꼭 숨어서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에 걸었던 길들을 다시 걸어보고 싶어졌다. 비가 오기 전으로, 간다.
전날, 전날 그러면 어떤 상상이 떠오르고 그때 기분이 무엇을 닮았는지 물으면,
'언제적 전날' 그러겠지?
미안한데 그냥 '전날'이라고만 하면 안 될까.
'그냥'이라는 말처럼 힘들이지 않고 숨결인 양 흘러나오는 것으로 너의 안부를 묻는 일은 귀엽고 좋아하는 일이잖아.
봄비를 좋아하냐고 묻는 노랫말은 나이가 이쯤 됐어도 서서 걸어 들어오는 빛으로 환하거든. 그때가 언제였든 상관하지 않고 좋았던 이미지 하나가 구르면서 커지고 그것이 내 앞으로 와서 나를 그 안에 앉히는 역사 役事를 거부하고 싶지 않거든. 나이도 그냥, 세월도 그냥 먹고 싶은 것은 아직 철이 없어서다.
나는 모든 '전날'을 아끼기로 한다.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날들을 거기 모두 모아서 집도 짓고, 지금으로 간직하고 살기로 한다. 내 지금을 그렇게 넓히고 길게 늘어뜨려 닿을 수 있는 곳에 이르러 노래를 듣는다. 불빛들을 하늘에 하나씩 켜놓고 삶이 지나는 길에 이정표를 세우자. 자, 노래가 된 표지판들.
구례에 들렀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너는 인연을 곰곰이 다져가면서 세상에 온 것과 세상을 살아가는 일, 물론 세상을 떠날 날도 어렴풋이 떠올릴 것이다. 구례에 들어서면 환상처럼 눈이 내린다. 내가 닿으면 눈이 내리는 세상을 꿈꾼다. 언젠가 구례에서는 눈을 맞아가며 '타인 능해 他人能解'라고 읊어가면서 길을 걸어야겠다. 가을에 걷지 못한 그 길은 눈이 내리는 날에! 신발을 톡톡 털어가면서 귀찮게 운조루 앞을 서성거려야겠다. 송정에서 오미마을까지를 떼어놓고 아껴둔다. 호호 불어가며 군고구마를 까먹을 것이다. 그 길 어딘가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볼 것이다. 너희들 모르게 겨울을 약속하는 가을날은 볕이 따가웠다. 나 혼자였으면 볕을 등으로 다 받고서라도 구례에서 하루를 보냈을 테지만 구례는 겨울이어도 따뜻하니까.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날에 다시 찾아오기로 하자. 성삼재를 넘자.
어떤 연인들이 여기를 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내가 했었던가. 그랬던가.
스무 해도 전에 친구 하나를 화장해서 여기 찾아왔다던 말은 안 했을 것이다. 더구나 10월에는 더 하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천은사에서 받아먹던 통행료는 잊지 않고 꼭 꺼내서 거기 산문 山門 앞에 던져놓고 간다. 내 속이 얼마나 좁쌀만 한 것인지 그것으로도 대번 알아차리라고 떠들고 만다. 어서 산을 넘자.
너희는 무엇을 보느냐.
하늘은 봤냐, 우리가 가는 곳마다 거기가 어디인 줄 그것은 봤냐.
아빠는 더 이상 여기가 어디라는 말은 생략할까 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사라지고 말 것들은 너희들이 챙기길 바란다.
노고단에 올랐던 일을 그새 잊었는지 감흥이 없는 너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사람을 적적하게 만든다. 자연은 멀구나. 디지털이 대세다. 스며들고 파고드는 그 낭창낭창한 줄기가 뿌리처럼 서로를 하나로 묶는 인터넷 시대를 어쩌면 좋을까.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더 큰 두통을 초래하는 이것을 길거리에도 버리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르는 데 관심이 없던 사람은 내려가는 일에도 무신경하다. 삶이 그러하듯 이치가 그렇다. 그러니 너희는 걸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 한 발자국을 배우지 못해 이렇게 길을 빙빙 돌아서 어디로 가고 있다. 많이 걸었어도 알지 못하는 그것을 나는 '지금'이라고 부른다. 숨을 쉬고 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을까.
뱀사골 주차장에 멈췄다.
예감이 - 그새 볕에 열기가 가라앉았다. kimorebi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 그 이름이 그냥 좋았던 날들이 있었다. - 좋다. 너희는 여길 처음 걷는구나. 처음은 늘 신비하잖아. 아빠는 그것으로 오늘 허탕은 면했다. 뱀사골 계곡은 값나가는 길이다. 거기는 붐빈다. 그 길에서는 단풍이지, 단풍 맛을 아는 나는 날짜를 세어가며 우리가 조금 빨랐던 것을 인연이라고 여긴다. 뱀사골의 단풍은 살면서 꼭 찾아보거라. 몇 번을 봐도 설레고 말 것이니까. 걸음을 아껴 옮긴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를 추억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 그때는 사진을 들고서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던 철이었다며 지금보다 더 아까워하리라. 물소리가 두통을 씻어냈다. 뭘 보느냐고 문제 삼지 않아도 마음이 놓이는 푸르름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가 걸었다.
와운 臥雲 마을로 들어서는 다리를 건넜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고속도로에서 한 박자 놓치고 구례로 흘러들어 갔을 때는 몰랐다. 지리산 둘레길 5코스를 걷자고 했을 때도 전혀 와운 마을은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벌써 20년 전 - 전날, 오래전날 - 에 내 안에서 생겨난 계획 아니었겠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 전날들이다. 비싼 길을 걷고 났더니 걸음 자체가 고상해졌다. 윤기가 나고 품이 있어졌다. 그 걸음으로 천년 소나무를 보러 간다. 드디어 만남이다.
더 늦기 전에 사진을 좀 배워야지, 길에서 인연을 마주치면 탄성 대신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나는 살아있는 사진을 보고 싶어 한다. 세월이 지나서도 내가 봤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준다면 그게 고맙더라는 것을 완전히 바뀐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내가 없는 여기는 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없어도 세월이 흘렀어도 내가 알던 그대로, 그런 것은 세상에 없다. 세상에 없는 것이 머무는 곳, 사진을 찍는 일. 하나의 동작이 장소가 되어 저장되고 그 장소는 나를 초대한다. 더 늦기 전에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한다.
천년송을 지켜봤다. 여기가 산골이었으면 좋았겠다. 밥때가 되면 밥 짓는 냄새가 자작하게 졸아드는 그 산골마을이었으면 나는 천년송 곁에서 꼬박 하룻밤을 묵었을 것이다. 밤새 귀뚤거리며 내가 팔을 비벼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천년을 모르지 않는가. 내 하룻밤으로 감히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대보는 용기를 내어보고 싶었다. 돌아가자, 가더라도 그 할아버지가 잘 계시는지 물어는 보자. 언젠가 산골 마을 할아버지가 산에서 버섯이며 약초를 캐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웃으시던 화면이 나는 영 떠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끼리 안녕하시냐고 나누는 인사가 여기 와운에서는 하나의 보시가 되어 그 덕이 소나무에게 전해질 것만 같다. 사람들 덕에 사는 소나무가 그 품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마을.
도토리 묵을 한 접시 주문받았던 아저씨가 마침 그 할아버지 아들이었다니. 나는 어딜 가나 소설이 된다.
할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고 도토리 묵은 참말로 맛이 좋았다. 산이도 그 맛이 좋던지 날름 먹어치운다. 그래, 먹어라.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다시 일어섰다.
절반쯤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은 내 탓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지리산 때문이다. 내려가자, 산을 벗으러 가자.
우리 아이들은 그새 풍류를 배웠는지 물을 보면 발을 담그려 한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자기 마음에 드는 돌 위에서 짐을 풀어놓는다. 같이 있으면서 각자가 된다. 해방을 다시 맞이했다. 물에 가까이 다가간다. 저 거침없는 다음 동작들이여, 계곡은 소리로 가득했었구나. 살아있는 물은 소리가 난다. 또 사진을 찍어본다. 아마추어라도 되고 싶은 사람은 쉴 때마다 연습해야 한다. 소리가 나는 사진을 그 사이에 찍는다.
강이는 물을 좋아한다. 물을 만지고 건들고 떠보기도 하고 거기에 손이며 발을 담근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오랜만이다. 시간 많으니까 놀아라.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도 뜸해지면서 우리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물이 흘러간다. 시원해진 발바닥을 느낀다. 발바닥을 온몸으로 반가워한다. 톡톡, 수고했어 오늘도!
아, 로맨티시스트.
익숙한 음악이 들리는 거야.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좁은 산책 길에 할아버지가 앞에 가고 할머니가 가벼운 7부 바지 차림으로 그 뒤를 따라가는데 할머니는 걸음도 사뿐하다. 두 손이 흥겹다. 마지막 부분을 일부러 들리게 따라 불렀다. 거기는 잘 아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동시에 뒤를 돌아본다. 웃으면서 인사했다.
"노래가 멋져서요!"
"이 사람이 좋아해."
손으로 할머니를 가리키고 할머니는 웃음이 곱다.
산에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러워진다. 하루가 이런 식이라면 세월도 단풍이 들 것이다.
피곤해야 할 것이 그렇지 않았다.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그만큼 체력이 좋아진 것인지, 계곡이 좋았던 것인지.
별을 찾아서 달렸다.
내일도 날이 맑다. 내일은 둘레길 5코스 동강마을에서 수철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