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과 귀털 / 정태규

시의,

by 강물처럼

눈썹과 귀털

눈썹이 유독 몇 가닥 길게 자란다.

귀에서도 몇 가닥 털이 길게 자라 나온다.

그러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아내는 보기 흉하다고 자꾸 자른다.

속설이 맞든 안 맞든

어디까지 자라는지 보자고

자르지 말라 해도 아내는 그예 고집이다

내 눈썹과 귀털을

자기 마음대로 자르는 아내에게

화가 난다.

그러나, 그러나 생각해보니

고맙다고,

내 초라한 병구를 초라하지 않게 다듬어줘

고마웠다고,

이 세상 삶 다 살고 떠나는 날

가만히 웃으며

속으로 말할 참이다.

- 정태규, 당신은 모를 것이다 에세이집에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어머니 댁에 들러 신분증을 갖고 요전 날 입원한 병원에 가서 몇 가지 서류들을 발급받아야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온몸이 무겁다.

피로감이 눈밑에까지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평소보다 잠도 더 자고 일어났는데 까닭을 모르겠다.

일종의 덤핑증후군인가? 자가 진단을 해보지만 여느 때와 다른 피로감이다.

금방이라도 누우면 잠을 잘 것 같은 상태.

씻고 아침 먹은 지 반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거 참 묘하다.

어머니에게서 신분증을 건네받고 병원으로 향하다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영 피곤해서 좀 쉬었다 가야지 안 되겠다...

옷을 입은 채로 누웠다.

잠을 잤는지 정신을 잃었는지 모르게 시간이 지났다.

눈을 뜨니 11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막연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도 한동안 몸이 무겁다.

정신은 움직이자고 그러는데 몸이 이유 없이 무겁다.

무슨 영양소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비타민부터 먹어 본다.

유산균도 먹고, 과일도 깎아 먹어보고, 그것도 아니다 싶어서 계란도 삶아본다.

결국 오후에도 또 잠을 잤다.

좀 우울하게 잠을 잤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피곤해서 잤는데 기분은 더 무거웠다.

그 사이에 잠이 깨고 더 누워있고 싶지 않을 때 루게릭 환자 정태규 선생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리고 故박종윤 씨의 아이들 소식을 적었다.

오늘은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서 울적했던 날이다.

하지만 오늘은 훨씬 중요한 일들을 마쳤던 날이기도 하다.

그러면 된다.

한 줄이라도 그렇게 읽고 그렇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거룩한 거다.

내게도 그러하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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