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나에게서 하늘의 ´해´로 옮겨봤습니다.
내가 백 년쯤 산다고 하면 해는 백억 년 정도 빛을 내다가 꺼질 거라고 합니다.
백이 바라보던 백억은 신 神 같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신이었습니다.
하긴 그 옛날은 백 년이라는 세월도 무진장 길다 했을 테니 하늘의 태양은 얼마나 거대했을까 싶습니다.
감히, 라는 말이 동쪽 하늘 위로 떠오르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향해 빌고 다짐하고 의지하면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살았을 것입니다.
내가 보는 해는 정말 신처럼 생겼습니다.
해는 말합니다.
벌써 45억 년이나 지났다고, 아니 아직 그렇게 말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50억은 지나야 앞뒤, 전후의 맥락이 어렴풋하게라도 드러나니까요.
해가 바라보는 신은 어디에 있는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해에게도 신이 있을 것입니다.
해를 비추는 빛이며 내일을 약속하는 믿음이며 세상에서 자신도 사라지고 말 것을 깨우쳐 주는 존재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일이 즐거울 것입니다. 태양계 곳곳에 저를 쏟아내는 일이 감사할 것입니다.
해가 말합니다. 생로병사가 어디 너희들만의 것이냐, 더 이상 나를 신이라 부르지 않기를.
20년 정도 사는 고양이를 보면 이제는 수고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나보다 어른일 텐데 몰라봐서 미안했다는 말은 감춰둡니다.
개미 같은 것들은 정말이지 내가 어떻게 보일까요.
그것은 하찮은 것이 맞는지, 하늘의 태양을 생각하다 보니 헷갈려졌습니다.
그런 거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크게, 엄청 큰 것들을 떠올려서 내가 얼마나 하찮은 사람인지 일부러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재미없으면 너무나 작은 것들, 내 발에 밟혀 죽을지도 모를 것들부터 나도 모르게 먹어치우기까지 하는 것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가을이나 추위, 바람 같은 것도 그 안에 어딘가를 차지할 것입니다.
내 무내는 어디이며, 나는 그 무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정말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소품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연극을 했다면 나는 무슨 역할을 맡았습니까. 아니 그보다 주인공 옆에 있는 심술궂은 아줌마의 얼굴에 난 새까맣고 큰 점이 내가 맡았던 그것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허드레 인사말 같은 것이었다면요.
´어여, 반갑구먼, 오랜만일세. ´ 같은 존재.
차라리 그것은 낫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런 역할에 비하면, ´켁, 크악, 퉤, 퉤! ´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 18:8
그러니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기로 하면 좋은 것이 산처럼 많고 나쁘기로 하면 또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판화 화가, 이철수의 글을 동봉합니다.
콧등에 앉은 찬 바람이 신선하길 또 바라겠습니다.
-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합니다.
사노라면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게 되는지 모릅니다.
미운 것이 있고 고운 것이 따라서 있습니다.
도무지 조용해질 줄 모르는 마음을 따라다니면서 야단치기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지쳐서 구경꾼 노릇이나 합니다. 그래도 주고받는 상처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 없고 미움 없는 세상을 보는 일, 누구는 그런 눈이 무슨 소용인가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아야 환히 보입니다. 그렇게 보아야 바르게 보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기는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