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떠있는 해나 달, 별들의 위치는 그대로 계절이고 시간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시계였습니다.
크고 반짝이며 영원할 것 같은, 무엇보다도 임금에서 고리백정까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한 시계가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을까요.
어쩌면 시계는 그것이 제 역할이었을 것입니다.
숫자로 된 시간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에 곤궁한 머리들이 살포시 기대는 너른 어깨를 가진 것이 하늘이라는 시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달은 또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동네와 가깝게 놓였다는 이유로 늘 사람 곁을 지켰습니다. 모두 돌아가고 잠든 밤에 우두커니 홀로 세상을 비추면서 사람들이 벗어놓고 자는 신발이며 사연들을 빗질하듯 곱게 빗어주는 달빛은 무엇으로 그 고마운 정을 표할까 싶습니다.
하늘이 없다면 시도 없고 뮤즈도 없고 고추장이며 된장도 없을 것입니다.
별을 보고 노래하는 동주 東柱는 거기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 손목에 차고 다니던 그 많던 시계가 사라졌습니다.
하늘에 머물던 시계를 엑기스만 뽑아 사람들 손에 쥐고 신나게 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 잘 팔리던 엑기스도 한 시절이 다 갔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왼손을 치켜올리지도 쳐다보는 일도 없습니다.
정 情은 초코파이 상자에만 쓰여있는 글자가 되었습니다. 마케팅이 되었고 편리가 되었으며 그것으로 포장을 합니다.
하늘이 빛을 잃으면 바람꽃이 일어납니다. 황사라는 말도 낯설다 싶었는데 사실은 오래전부터 황사를 바람꽃이라 불렀더군요.
예쁜 바람꽃이 거기 그렇게 쓰였다니 지난 일이지만 어쩌지 싶었습니다. 하기는 그마저도 좋게 보고자 했던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순박하다 싶은 마음들이 애잔합니다.
하늘을 잊고서 시계도 시간도 정 情까지도 잃어가는 모습입니다.
사람에게 ´언제´라는 물음은 근원적입니다.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루카 21:7
생명 있는 것 중에 ´때´에 목숨 거는 종 種은 사람뿐인 듯합니다.
우리의 때는 중요한 것이 빠졌든지 중요한 것만 뽑아놓은 느낌입니다.
11월 찬비가 내린 날 아침이면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떨구고 나무들은 텅텅 빌 것입니다.
그 나무들이 쓸쓸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시간 개념 탓입니다.
나무의 시간은 하늘의 시간을 따라가기에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별도 보고 달도 보면서 해가 뜨면 즐겁지 않더냐고 노래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으로 행복한지요.
사람이 만든 시간 중에 이런 시간이 있습니다.
한 식경 食頃, 일 다경 茶頃, 밥 한 끼 먹으려면 한 식경이 필요합니다.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이 다경입니다.
그런 시간을 만들 위인은 못 되고 그런 시간이나마 놓치지 않고 살펴 가기를 희망합니다.
내 시계는 하늘이며, 그 하늘이 차마 다 가르쳐주지 않는 틈틈을 나는 살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새벽 시간, 한 장의 편지를 쓰는 시간은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편안해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