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03

아침에,

by 강물처럼

여기 이 장면도 몇 번이나 마주쳤습니다. 그때마다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빠질 수 없다는 그 유명한 말이 오늘은 이쪽으로 흐르는 것을 바라봅니다.


어제 흘러갔던 물은 지금 내가 보는 저 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제 흘러갔던 물도 지금 내가 바라보는 저 물과 같습니다.


이 말 저 말을 섞는 것이 아직 잠에서 덜 깬 사람 같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는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저 고고히 흐르는 강 江입니다.


그 속에 흐르는 물은 감정일 뿐이고 내 감각으로는 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흐르는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의 운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제의 나는 분명히 지금의 나와 같습니다.


내가 나인 것을 나는 증명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자각할 수 있는지요.


CCTV에서 가리키는 나라는 존재는 어느 정도의 실상 實相을 드러내고 있는지요.


실상 實相이라고 하면 실제 모양이나 상태를 말하며,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입니다.


과연 화면에 비친 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거짓을 말하거나 상상이나 허구로 된 이야기들 앞에서 실상 實狀을 밝힐 것을 요구합니다.


과장된 세계, 꿈속의 세계에서 이곳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실상 實狀입니다.


실상을 딛고 서지 않으면 현기증이 나고 헛것으로 쌓은 것들은 무너지는 일도 없이 높아만 갑니다.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는 그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다스리려고 그러는지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루카 21:2



하나만 더 곁들이겠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냇가에서 수영을 배웠습니다. 그것을 수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지만 헤엄을 쳐서 물을 건너곤 했습니다. 때로는 키가 넘는 깊은 물속에도 들어갔다 나오면서 뿌듯한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심해지면 만만한 돌 하나를 정해놓고 그것을 찾습니다. 누가 먼저 찾나 그러면서 물속에 던져 넣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중에 배웠습니다. 물 밖에서 내가 보던 것과 실제로 돌이 떨어져 있는 위치가 다른 것은 빛의 굴절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본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낯설면서 신기했습니다.


그때 내 눈에 보였던 것을 허상 虛像이라고 하며 그것은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던 그 돌이야말로 실상 實像인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강물은 실상 實相입니까, 실상 實狀입니까, 실상 實像입니까.


나는, 어떤 나야말로 나입니까.


헌금함에 예물로 넣어진 렙톤 두 닢은 어째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은 것이 됩니까.


내가 렙톤 두 닢을 넣으면 가장 많이 넣게 되는 것인지요.



길을 걷는 까닭은 무엇이고 왜 사람들은 좋은 것들을 좋아하는지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누구는 누구의 누구인지요.


흐르는 것은 없는 것처럼 흐릅니다. 바람이 그렇고 세월이 그렇고 강물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있습니다. 바람이 그렇고 세월이 그러하며 우리가 그렇습니다.


돈이 아니라 렙톤 두 닢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보여야 손에 쥐고 헌금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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