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10

아침에,

by 강물처럼

처음에는 말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만 같습니다. 그것이 시늉이란 것일 수도 있고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말은 태어날 때부터 배우는 것이었으니까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더듬고 탐구하고 만지면서 그리고 찾아냅니다.

그런데 말은 우주 같으면서 우주가 아니었습니다.

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모음과 자음을 이용해서 사람이 소리 낼 수 있으며 그 의미를 간직한 말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말보다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도 있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람에게 말은 쌓이지 않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하나부터 배워야 하다는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여튼 운이 좋은 일인 듯싶습니다.

지식과 경험은 재산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유산 遺産처럼 상속되지 않습니다.

공동체적인 성격을 띠었을 때, '문화'가 되어 그것은 공동의 자산이 됩니다. 우리 전체의 수준이 되고 전부의 살림을 윤택하게 이끌어주는 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문화를 한 개인이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말을 한 사람이 다 소유해서 '천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독점이 허용되지 않고 카르텔이 없습니다. 담합도 스트라이크도 없습니다. 물론 성격이나 건강이란 부분은 유전자들이 부리는 조화 造化, 자연과 만물의 조화 調和 로운 회전 안에서, 좀 더 경건하게 표현하자면 '섭리' 안에서 말없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전해줘도 무방하고 어떤 것은 조금만 허용 되며, 어떤 것은 전달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이 조합을 분석해서 다시 배열하고자 할는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사람인 저는 깜깜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보수적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빛나는 순간은 있습니다. 그것을 절호한 기회나 무기라고 말하면 우습지만 '은유'를 아시는지요.

전달할 수 없는 의미를 겉으로 표현하는 표정이나 스토리, 거기에는 은유가 흐릅니다. 생각이면서 방법이고 방법이면서 의미 자체로 형형합니다. 말 주머니는 바닥이 보이지만 은유를 믿습니다. 그것이 있으면 빵을 구울 수 있습니다. 쪼가리를 모아 예쁜 앞치마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오 4:19

어부는 별로였지만 사람 낚는 어부라면 해보고 싶어 졌을 것입니다.

거기가 어딘지 가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처음 듣는 그 말이 설레기도 했을 것입니다. 은유는 먼 데 있어도 찾아드는 빛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길 안내를 받으며 걸어가 볼 용기가 생깁니다. 옛날 말 '당의정' 같은 말처럼 겉을 싸고도는 포장이 은유이길 바랍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러는 것처럼 내가 아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은유라면, 그렇다고 한다면.

구부러진 길 -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와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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