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안 지는 17년 됐습니다.
그는 여전히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나보다 몇 살 덜먹었다는 것은 아는데 나이도 잘 모릅니다.
참 친한 사람이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그를 누구 씨라고 부릅니다.
호칭은 적어도 우리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를 못 본 지도 8년째 되고 있습니다.
그나 나나 사는 것이 거기에서 거기인 까닭입니다.
하지만 늘 생각합니다.
내가 유일하게 시간을 정해놓고 소식을 묻는 사람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그 목소리를 들어야 내가 살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는 어느새 나에게 한라산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고 싶고 딛고 싶고 속삭이고 싶은 먼 데 있는 산 말입니다.
길 위에서 짧은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쭙잖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 던지는 말들, "아니야, 소재가 많은 것은 아니거든요.
나는 영희 씨보다 더 단조로울 거야. 나는 만나는 사람도 없어.
그리고 이제 만나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거든요. "
그럼 어떻게 그렇게 매일 쓸 수 있냐고 그럽니다.
쓸 수 있다고 쳐도 쓸 것이 있어야 쓰는 데 자기는 쓸 것이 없다고 웃습니다.
"영희 씨, 나 그동안 돌아가신 분들 많이 봤어.
옆에서도 봤고 한 달 동안 지켜본 적도 있어요. "
형은 좀 어떠냐고 그가 또 묻습니다.
"나는 좋아요, 좋으니까 쓰지."
그러면서 내 긴 사설을 풀었습니다. 사실은 그런 거 같다며.
"살고 죽는 일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 아닌가 싶어.
누구나 다 똑같잖아요. 내가 하나 좋아졌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이거라도 어디냐. ´
이렇게 쓸 수만 있어도 좋다는 그런 것이 생겼다는 거야.
그러니까 영희 씨가 말하는 소재라는 것이 더 잘 보이는 건지도 몰라요."
그를 만나면 꼭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그건 정말 유혹입니다.
하지만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본 적 많이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안 가본 데를 가보는 맛을 즐깁니다.
저는 보기보다 식도락가이니까요.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 마태오 15:37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정문에서 들어가면 항상 눈에 보이던 그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는 영희 씨가 자랑스럽고 영희 씨한테 내가 자랑이 되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