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나 공감이 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터넷상에서의 공감수는 다른 것들의 척도가 됩니다.
가공할 위력을 뽐내며 날마다 덩치를 키워갑니다.
우선 공감을 얻어야 그다음이 진행되는 구조 안에서 모두들 열띤 경쟁을 펼칩니다.
선거도 결국 그 싸움입니다.
그런데 공감이란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습니까.
2021년 12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세력을 하나 든다면, 누가 뭐래도 ´코로나19´가 될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이 혼돈이야말로 거대한 인기입니다.
다시없는 호황입니다. 범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힘이 지배적입니다.
´공감´의 약점이 거기에 있는 듯합니다.
공감 共感의 공 共이란 말은 그래서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게 그 경계를 꿋꿋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과제를 품고 있습니다.
각각이 깨어있지 않으면 아침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의 아침은 그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늘의 해는 자꾸 높아집니다.
내가 어디에 머물러 있든지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루 해는 다 지나가고 맙니다.
나는 그것에 공감하며 그에 맞게 살아가면서 동시에 내 하루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것이 약한 것들의 자유이며 책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에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공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닌데 공감되지 않는 것들이나 공감이 아닌 것들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짙게, 길게 키우는 일입니다.
´재미없는 것´을 어떡하라는 것이냐. ´맛없는 것´을 너는 먹겠냐.
´돈 안 되는 것´을 너라면 잡고 있겠냐. 그럴 수 있느냐.
모두가 그쪽으로 향하면 분명히 그 판은 뒤집어집니다.
길 가운데 가장 슬픈 길은 되돌릴 수 없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매일 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우리의 동의나 이해, 공감을 벗어던지고 훌훌 떠나갑니다.
우리는 시간 위에 타고 내리지도 못한 채로 더구나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화살같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위대합니까.
만물의 영장이란 칭호는 과연 합당합니까.
사람에게는 어째서 ´공감´이라는 영역이 주어졌을까요. 시간은 왜 제멋대로일까요.
기도가 어렵다고 할 때, 쉬운 말로 바꿔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 몫입니다.
자기 몫이란 숭고한 것이며, 그 자체로 많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공감입니다. 그것을 원합니다.
돌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소곤거리는 돌담은 오백 년이 지나도 끄떡없습니다. 그동안에도 여름은 몇 번, 겨울은 몇 번이나 그 아래를 지나면서 돌담 하나 예쁘장하게 잘 낳았다며 그 쌓아 올린 손을 대견해할 것입니다. 그런 공감이라면 늘 반가울 것 같습니다.
음악에는 돈이 되는 코드가 있고 소설에는 돈이 되는 스토리가 있으며 삶에는 돈이 되는 코스가 있습니다.
공감이 돈을 버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아슬아슬합니다. 공감이 자기 몫을 잃고 다른 가치에 함몰되면 냉정한 사냥꾼이 되고 맙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음악이 아니고 소설이 아니며 삶이 아닌, 공감의 변이를 각오해야 합니다.
공감이 독트린이 되지 않기를. 공감이 도그마가 되지 않기를.
그것은 들숨과 날숨이 나드는 숨구멍이 되어 사람을 살려내기를 그러고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인간적이기를.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
공감받지 못해서 추운 이들에게 모닥불을 내놓습니다.
못났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면 거기 모아 태우십시오. 그 열기로 우리는 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못났습니까.
정말 못났다고 여겨질 때, 그때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그대여 가라. ´
우리는 못났어도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괴롭기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