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13

아침에,

by 강물처럼

그런 말, 지금 그 자리가 꽃자리라는 말.


얼토당토않은 말, 어림도 없는 말.


그런데 참말, 그래서 아픈 말.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이런 인사는 처음인 듯싶습니다.


이제는 밤이 평화로워졌다는 뜻일 겁니다.


말은 눈치도 빨라 저 있을 자리를 미리 알고 까불다가도 어느 날부터는 모습을 감춥니다.


사람이 알지 못하게 쓸쓸한 것도 아쉬운 맛도 느끼지 못하게 훌쩍 사라집니다.


그런 말들을 만지작거리며 허송 虛送 하고 있습니다.


진작 그러고 살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괜한 욕심이 또 동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우리는 짐작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한 패가 되어 살아가니까요.


임꺽정이 살던 시대는 얼마만큼 지금과 달랐을까요.


거기 나오는 알뜰한 문장을 하나 엿보고 싶습니다. 엿듣고 싶습니다.


젊은 부부 사이의 대화입니다.



"역졸은 저의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역졸인가. 너나 할 것 없이 할 수 없으면


역졸이라도 나니지 별수 있나."


"부자가 대대로 역졸을 다닌다니 근본이 역놈이지 무어요."


"근본 가지구는 사람을 말하지 못하네. 내가 사람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당대에 영웅호걸이라구


할 만한 인물은 거지반 다 근본이 하치않은 모양이데. 다른 사람은 고만두고 우선 보게.


우리 매부만 한 인물이 지금 양반에 있을 듯한가. 지금 양반은커녕 그전 양반에두 없을 것일세.


전에 조재상이란 양반이 잘났었다지만 그 양반두 우리 매부의 선생님께 배웠다네. 우리 매부의


선생님두 근본으루 말하면 고리백정이구 갖바치야. 갖바치에서 생불이 나구 쇠백정에서 영웅이


나는 걸 보게. 근본을 가지구 사람을 말할 건가. 아무리 소견 없는 여편네라구 하더래두 황천왕둥이의


안해 노릇을 하려면 이만 일은 짐작해야 하네."


옥련이는 할 말이 없든지 "긴 사설 고만두어요."



근본이란 말이 지금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그림자로 옷을 해 입고 그것으로 이불을 만들어 지냅니다.


세상에 없는 양반이 되어 자리를 보전하려고 합니다.


양반을 좋아하고 양반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세상에는 근본을 따지는 신분제가 존재합니다.


내가 근본이란 말을 꺼내어 밤새 닦을 때가 있습니다.


놋그릇 하나 전해지는 것이 없는 우리 집 거실에서 내 근본을 살살 만져보는 날이 있습니다.


비밀스럽게 또는 애틋하게.


´산이와 강이가 이방에서 저방에서 자는 세상. ´


잠을 자면서도 풍경을 이루는 그 세상을 나는 어떻게 돌아서 갈까, 궁리하다가 궁리하다가 시간을 보냅니다.


나에게서 났지만 내가 아닌 너희로 살기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 근본이란 말은 내가 맡아서 훨훨 날려보내기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 마태오 9:29,30



작가의 이전글기도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