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백.
처음 숫자를 세고 백이란 말을 이해했을 때 반갑고도 막연했던 심정.
너무 많은 돈을 줍고 말았다는 복잡한 감정.
그것을 보관할 수도 없고 숨겨둘 자신은 더욱 없어서 한숨만 길어졌습니다.
열까지만 알아도 됐는데 다시 열에 하나, 열에 둘, 그러다가 백!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번져오는 불안,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이것은 뭐야, 끝이 없잖아. 끝낼 수가 없잖아.
무한한 처음, 하나, 일, 백 다음에 일은 시작이었으며, 천 다음에 일, 그리고 계속 다시 일...
아침이면 독수리에게 뜯어 먹힌 간이 자라고 돌을 굴려 산을 오르는 그 신화 속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숫자가 가르쳐줬습니다. 무지막지한 일이 무지한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매듭이 풀어질까 봐 두근거렸습니다.
단위를 알아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옷고름을 풀고 맺는 일처럼 손에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인 같기도 했습니다. 아흔아홉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나날 같았고 마지막 하나는 설레고 떨리는 환희 같은 것이어서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기다릴 줄도 알고 반가워할 줄도 알고 이별도 마련해 줬습니다. 긴 고름과 짧은 고름은 아흔아홉 마리 양입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은 내가 살아온 날들이고 내 남은 날들입니다. 잃어버렸다가 찾은 한 마리 양은 고름이 맺는 매듭이며 내 기억입니다. 기억하지 못한 날들이 기억하는 하루를 돕습니다. 그래서 나는 백 百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스스로 하얗게 백 白이 되어 향내 나는 매듭을 지어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얘질 것입니다. 다 타고 남은 것들이 하얗습니다. 눈이 쌓일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까맣던 눈썹은 옛날을 그리워하지도 않을 것처럼 단호하게 백 白이 될 것입니다. 그러라고 내어줍니다. 나는 나를 내어줍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오 18:14
그런 하나로, 해 뜨는 데에서 해지는 데까지 하루, 한 살, 한 생을 지나가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성가 166장 ´생명의 양식´, 나 그를 사랑하여 나 그를 살게 하리. 나 그를 영원히 영원히 살게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