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19

아침에,

by 강물처럼

공부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절반쯤 맞고 절반쯤 그른 듯합니다.


쉰 살이 넘어서는 무엇인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다는 당연한 말이 아니라, 잊거나 잊히는 것이 정말이지 쏜살같습니다.


무엇 하나를 배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배운다는 말은 쌓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연습한다는 뜻입니다. 연습하기 싫어하면 배울 수 없습니다.


성실하지 못하면 배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 좋은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바지런한 것을 먼저 알아주고 치켜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으로 미루거나 밀리고 맙니다. 저절로 되는 것인 줄 압니다.


꾸준한 것이 이겨냅니다. 글자 그대로 수적천석 水滴穿石이 됩니다.



젊을 때는 머릿속이 유연하고 총기가 있어서 공부하기에 적당하고 쉬운 듯합니다.


자연의 이치에 또 한 번 무릎을 치게 됩니다.


공부하기에도 좋은 때이지만 활동하기에도 그만한 시절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화양연화 華陽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앉아서 책만 보기에는 젊음이 너무 젊습니다. 누구나 그때 고민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풋풋하고 불안하며 곡선을 동경하는 직선인 채로 가깝고도 먼 날들을 설계합니다. 그것은 꿈일 수도 있고 현실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에 더 가깝게 그림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사느냐는 그 젊음의 가치관이 됩니다. 그래서 답은 없습니다. 거기에 무슨 행과 불행이 있습니까. 다만 누군가는 보기 좋으라고 아니면 보기 좋게 나이를 먹어갈 것이며 누군가는 가슴 아픈 것도 하나쯤 속에 생겨나서 다른 세월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뿐이라는 말, 묘지 앞에 서 있는 십자가 닮은 말을 언젠가 마주치게 되는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공부가 무엇인지, 그 생각입니다.


밖이 조금 밝아지는 느낌, 밤부터 새벽까지 어둠 속을 지나온 빛은 그때가 되어서야 모습이 드러납니다.


드러난다, 그것은 두 가지 힘의 상호작용입니다. 빛이 있고 때가 되면 드러납니다. 밝혀집니다.


공부는 무엇이 아니고 방식인 듯싶습니다.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 밑이 뚫린 항아리 같습니다. 몇 번을 말했지만 저는 오늘 복음도 아마 열 번은 넘게 적었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말끔히 물이 다 새고 말았습니다. 깔끔하다 못해 허탈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공부´가 있는 것을 알겠습니다.


쌓을 것이 뭐 있나 싶은 것입니다. 쌓은 것이 뭐 있느냐, 젊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지적할 것 같습니다.


돌을 뚫고 나면 빈 공간이 생깁니다. 돌을 뚫는 순간에 물도 돌도 놀라면서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그것들로 물기가 마르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맞부딪히지 않고 둘이 하나로 작품이 됩니다. 공부를 잘하면 작품이 됩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마태오 11:19



시든 볕을 배경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시큰해 보입니다.


그때 출렁입니다. 마음이 바다가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기도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