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패랭이꽃 / 이승희
착한 사람들은 저렇게 꽃잎마다 살림을 차리고 살지,
호미를 걸어두고, 마당 한켠에 흙 묻은 삽자루 세워두고,
새끼를 꼬듯 여문 자식들 낳아 산에 주고, 들에 주고,
한 하늘을 이루어간다지.
저이들을 봐, 꽃잎들의 몸을 열고 닫는 싸리문 사이로
샘물 같은 웃음과 길 끝으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
보이잖아, 해지는 저녁, 방마다 알전구 달아놓고,
복(福) 자 새겨진 밥그릇을 앞에 둔 가장의 모습, 얼마나
늠름하신지, 패랭이 잎잎마다 다 보인다, 다 보여.
대학에 다닐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시'는 탄생하여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금도 그 생각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천재 시인'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발견하러 떠나는 여행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모험가나 탐험가로 나서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 곳곳에는 태곳적부터의 신비를 간직한 수많은 시詩가 사람의 발길을 기다리며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내 거기에 알맞은 시각視覺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꽃이든, 달이든, 세월이든 그것들이 제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또 무슨 일이든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시각時刻이 있어야 한다.
기다리든, 마주치든, 어긋나든 간에 거기에는 인연이라도 좋고 운명이라 불러도 좋을만한 때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게 어디 사람 하나의 손으로 이루어질 일인가.
뛰어난 그 머리 하나로 완성될 일인가.
그러니 으시댈만한 일인가.
시를 썼다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나는 더는 시를 찾아내고픈 마음이 수그러든다. 꽃봉오리 지듯이. 스르르.
패랭이꽃이 환상적이다는 사실을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다.
나에게는 그랬어야 했나 보다.
네 나이 서른에는 패랭이를 보더라도 지나치고 말 거라며 만경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첫사랑은 이야기했었다.
푸르스름한 이내가 깃들던 저녁 하늘에서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맹세처럼 다짐했지만,
패랭이꽃은 그 첫사랑처럼 끝내 시가 되어주지 못하고 여러 해를 피었다가 지기만 했다.
먼 곳으로만 떠나는 일은 진짜 떠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짜 떠나는 일은 가장 가까운 것과의 헤어짐이다.
먼 곳으로만 향해서는 진짜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피어있는 패랭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대의 작으면서도 큰 잘못이다. '샘물 같은 웃음'을 잃어서는 사는 것도 재미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