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아이

영화의,

by 강물처럼


확실히 날아오던 공이 중간쯤에서 사라졌다.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뒤로하고 아이가 공을 던졌다.

나는 그 하늘과 아이와 공을 한꺼번에 시야에 넣고 있었다.

황혼 黃昏이다.

그 어스름한 빛이 아이도 공도 감춰버린다.

내게 날아오던 공을 놓치고 멀리서 가라앉는 하늘과 그 하늘빛에 십자가처럼 마주한다.

그 순간 대기는 여름의 멜로디를 완성시킨다.

8월 마지막 일요일 모든 것들이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늑대 아이'를 봤다.

내가 본 것은 고귀함이었다.


첫눈에 반할 수도 있다는 사람과 첫눈에 반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두 사람 중에 어느 쪽에 마음이 가는가.

나는 어느 쪽에 있는 사람인가.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첫눈에 반하고도 첫눈에 반한 적 없다고 기억하는 류, 첫눈에 반한 적 없으면서 첫눈에 반했다고 믿어버리는 그런 류가 나다.

누구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반가우면서도 쓸쓸할 것 같다.

그의 이상한 버릇을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대학 강의실에서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는 시작한다.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태동이고 모든 것의 첫 문장일 수 있는 공간을 꼽으라면 대학 강의실이 충분할 것이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하나' 하나는 꽃 花.

마침 코스모스가 피었었다고 그랬다. 하나가 태어나던 날, 집 뒤뜰에는 꽃들이 보기 좋았다며 꽃처럼 '일단' 웃고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란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막 움직일 준비를 끝냈을 때 '여학생'이란 존재는 얼마나 기특한 우연인가.

세상은 공기와 물과 스토리로 가득한데 여학생이야말로 그것들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잘 살아가게 돌봐줄 수 있는 창조물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갈 곳 없는 것들이 처마 밑에 모이듯 외로운 한 영혼이 여학생의 눈빛 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애틋하고 달짝지근했으며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도 길 잃은 고양이 같았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

볕은 따갑고 방안은 터널처럼 텁텁했으며 길거리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슬픔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젊음이 어떤 형벌인지 눈뜨면 피할 길 없이 지내다 눈감고 누워서도 신열 身熱처럼 앓고 나면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나야말로 '늑대 같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누구에게나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맑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춰볼 수 있다가 또 넓은 창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대는 늑대여도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할 줄 알고 마지막에는 소원도 빌 수 있다.

그런 동화보다 더 실감 나게 자식도 낳아 기를 수 있다.

눈이 내리는 날에 낳은 딸은 유키라고 이름 짓고, 유키는 눈 雪.

비가 내리는 날에 태어난 아들은 아메, 아메는 雨

그래서 영화 제목이 '늑대 아이' 원제는 오오카미코도모노 유키도 아메 おおかみこどもの雪と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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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별은 해봤지만 이별 인사를 나눠본 적이 없다.


'해준 것이 없어서 어쩌지'


꽃이 눈과 비를 맞으며 그것들을 키운다고 생각해봐라.

눈과 비가 꽃을 가꿔도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 꽃이 걸레질을 하고 지붕을 고치고 감자를 심고 땅을 판다.

대학 강의실에서 하나가 첫눈에 반한 남자는 늑대였다.

혹시 무조건 늑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차례가 됐다.

어떤 동물 학자들은 '늑대 같은 남자'야말로 최고의 남자라고 이야기한다.

암컷을 평생 사랑하고 암컷이 죽으면 새끼를 돌보고 사냥을 하더라도 제일 강한 상대를 사냥하러 나서는 늑대는 남자를 닮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려줬어야 했었나?

남자 같은 늑대를 조심해야하고, 늑대 같은 남자는 잘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꽃이어야 하니까.

꽃은 지고 나서도 꽃인 것을 안다.

좋은 기억에는 늘 꽃이 피었거나 꽃향기가 난다.

하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가 되고 사랑이 되고 하나의 생 生을 갖춰나간다.

산속에 있는 집이 말끔해지는 것과 같은 걸음으로 유키는 소녀가 되어가고 아메는 늑대아이가 되어간다.

아메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달린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괴로웠지만 끝까지 자식을 보듬는 엄마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놓아주는 데까지, 세상에 두 아이를 맡기는 순간까지 지키고 살았던 꽃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

뜨거운 햇살이 붉게 피어나면서 푸른 빛이 먼 데서 번져오는 것을 맞이한다.

황혼은 꽃처럼 개와 늑대의 시간에 카레타소 彼誰そ 거기 누구인지? 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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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상하게 그 말이 맴도는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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