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척 / 박제영

시의,

by 강물처럼

지척 / 박제영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아느냐 물으니

당신은 하늘에서 땅까지 아니냐고 물었지요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잘난 척을 좀 했지요

지척(咫尺)

지(咫)는 여덟 치, 척(尺)은 열 치

한 걸음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지척에 두고 평생을 만나지 못하기도 하는 먼 거리가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했지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마음이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라며

잘난 척을 좀 했지요

당신은 웃으며

이렇게 물었지요

당신과 내 거리가 지척인 것은 알아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럴 때 있다.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못 찾을 때, 지갑을 어딘가에 뒀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오늘 같은 경우에는 밑줄 그어 놓은 책을 찾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럴 때 찾다가 어느 순간 그만둔다.

포기하듯이 딱 그 자리에서 멈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은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것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그것들을 찾고자 나는 필요 이상으로 열을 올렸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열이 오르면 눈이 어두워지고 귀는 더욱 어두워지고 마음은 더더욱 어두워져서 열이 화가 되고 만다.

눈 앞에 두고서도 못 보고 마는 것들이 많다.

손에 쥐고서 애꿎은 책상 서랍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인지 못 보는 것인지 물어봐야 할 때가 있다.

일본 키타규슈에 여행을 갔을 때 보았던 전철 광고가 기억에 난다.

'몇 번이면 지나가고 만다. 아이의 여름'

그렇다.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평생을 살면서 아이가 소중하게 간직할 그해 여름을 어른들은 못 본 채 지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 '눈 앞'

그것이 지척이라고 해도 좋다.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았다는 변명은 하지 않고 살기를 희망한다.

나여,

찾아도 보이지 않을 때는 내 마음이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깨닫고 차분해질 것을 명한다.

그리하여 시간을 보낼 것.

아예 다 잊고 살지는 말고 어쩌다 그것을 잃었는지 가끔은 스스로 물어도 볼 것.

그러다 운이 좋게 어느 날 눈에 띄거든 좋아라 박수라도 치면서 반길 것.

사람이든, 돈이든, 건강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반기면서 꼭 손 잡아 줄 것.

미안하다며 꼭 부여잡고 다시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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