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36

아침에,

by 강물처럼

코로나로 인해 바뀐 일상, 말하지 않아도 많습니다.

일상이란 말부터 바뀐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사람 만나지 않고 명절에도 이동하지 않고.


코로나 시대에 만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글쎄요, 그 얼굴이 아니네? 이런 느낌 있을 것 같습니다.


코 아래는 다들 상상하면서 지냅니다. 나중에 마스크 벗게 되면, 그게 너였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강제´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앞에 붙으면 이제부터는 내 뜻이나 의지와는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강제 종료, 강제 집행, 강제 추행, 강제 수용, 강제 노동, 그 밖에도 아직 말은 되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우리의 자유의사를 훼손할 수 있는 힘 있는 강제 强制는 많이 있습니다.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이 꺼집니다. 밖에서 모닥불을 지펴본 적 있는 사람은 사그라든다는 말이 갖는 여운이 무엇인지 압니다. 거기에 있는 강제는 사람이 실시하는 강제와는 사뭇 그 모양이 다릅니다. 자연스러움을 내포하고 있어서 사람을 숙연하게 하기도 하고 수긍하게도 합니다. 도리어 그럴 수 있어서 고마웠다는 심정이 들기도 합니다. 잘 돌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 강제가 때로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왜 불은 때고 피운다고 그럴까요. 불은 지피고 사르고 태우기도 합니다. 그것이 묘하게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으로 미끄러집니다. 누구나 하나의 삶을 사는 것인데 누구는 그것을 지피고 누구는 사르고 어떤 이는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잘잘못간에 따뜻하게 그리고 밝게, 그것이 불이 가진 본성이니까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 불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태춘의 촛불이란 노래를 한번 불러보고도 싶은 것이 세밑은 세밑인 듯싶습니다.




우리 아이는 강제 방학을 당했습니다.


코로나 환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예고도 없이 월요일 아침 등굣길부터 방학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정말이지, 강제라는 말은 기다림의 미학을 절대 모릅니다.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기다려? 도대체 그게 뭐 하는 거냐며 왜 그러고 사냐는 듯 사람을 창피 주는 것 같습니다. 강제되는 시대, 불안해하며 지나는 일이 전부입니다. 아무 일 없기를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기다림은 통제되고 사람들은 집안으로 유폐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그 장례가 신산스러울 정도입니다. 안타까움이 소용돌이치며 격랑처럼 몰아치는 바다에서 사람들이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일지요. 세상에 강제는 많은데 의지가 되는 것은 적습니다. 매끄럽다는 말은 걸리는 것이 없다는 것인데 우리가 강제하는 것들이 과연 매끄러운 것들인지, 입으로 삼킨 밥이 속에서 걸릴 때마다 생각합니다. 나는 매끄럽지 못하다. 수술이 아무리 잘 되었어도 갖고 태어난 것만 못합니다. 다만 그것을 잘 다스려서 그것으로라도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의지인 듯합니다. 탈 없이 사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습니다. 꿈이 용감해지면 사람이 자유로워집니다. 진짜 자유는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그런 자유를 그립니다.




요즘은 종업식도 학교마다 다릅니다.


억새풀이 바람 속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좋아 보여서, 편지를 쓸 때가 있습니다.


지금 시대가 편지나 쓰고 있을 그런 한가로운 때가 아닌 줄 알지만 그때 한 번 억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쓴 편지입니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중학교 다니는 녀석에게 오늘 아침 들려서 보낼 생각입니다.


틀린 곳이 없나 같이 봐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아멘



추신 - 편지




일상을 회복하고 산이는 학교에 등교한다.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다. 누구하고 통화를 하는지 알 수 없다. 말해주지 않는 것이 수상하긴 한데 프라이버시가 생겨나는 이 시점에서 내 마음대로 산이의 영역에 침범해서는 안 된다. 예민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냈던 시간의 대부분은 거름이 되어갈 것이다. 결국은 양분이 되어 그것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삶을 지탱해 주는 뿌리, 그 뿌리의 무늬.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이파리, 그 이파리들이 추는 춤의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역동적인 것이 인생이라면 움직임을 이끄는 힘이 먼저 생겨야 하고 그 힘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들의 젖을 먹고 자라는 인간미, 아름다움 그 자체일 것이다.




나는 산이가 아름다울 것을 믿는다.




그래서 올해도 산이 선생님에게 편지를 쓴다. 계속 쓰고 싶은 이 편지는 항상 산이의 선생님들을 향할 것이다.




아비의 부탁이기 전에 사람이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되는 길이 겹겹이다. 층층으로 쌓아 올라가야 한다고 해도 넙죽 받아먹겠다. 그만큼은 해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냐며 선뜻 복받치는 이것이 내 살아있음의 시린 흔적이어도 나는 애틋하다. 올해도 너 때문에 나는 좋았다.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산이가 4살 때 쓰기 시작한 편지가 이제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께 보낼 정도로 자랐습니다.




편지 나이가 열한 살, 아직은 철부지여서 선생님께 내보이기 부끄럽습니다.




그 편지가 몇 살쯤 되면 저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기대에서 놓여날까, 잠시 상념에 잠깁니다.




지난 1년 동안 애써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산이는 몸도 마음도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우리가 지켜보지 못했던 순간에도 아이가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낮과 밤, 하늘과 땅이 서로 도와 생명을 키우는 이치를 귀중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나무 하나를 키워내는 일도 자연이 허투루 하지 않는 것에 경외감이 듭니다. 보이지 않게 우리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신 선생님께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말씀 전하고 싶었습니다.





산이는 며칠 전부터 레고 장난감을 조립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삼매에 빠졌습니다. 모처럼 아이의 몰입과 집중을 재발견하는 것 같아 저도 흥겹습니다. 중학교 2학년은 마흔이 되고 쉰이 되더라도 언제든지 떠오르는 시절이라 일부러 덩치가 큰 것을 선물했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공부도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비의 욕심일 것입니다. 내 욕심이 아니라 아이의 바람을 먼저 챙길 줄 아는 공부가 저한테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비나 자식이나 늘 공부가 부족한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선생님이 계시는 듯싶습니다. 그러니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 가치는 또 얼마나 숭고할까 싶습니다.





아이 엄마 편에도 선생님 말씀을 자주 접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세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걱정을 덜하고 이 무서운 코로나 상황에도 아이를 학교에 잘 보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습니다. 적절한 때에 쇠를 두들기면 단단해집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관심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좋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길게 더하지 못하고 그만 맺겠습니다.




댁네 두루 평안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12월 30일. 산이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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