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39

아침에,

by 강물처럼

열여덟 살이나 열아홉 살 먹은 학생들에게 새해가 되면 묻습니다.


너는 어른인 거 같아, 아이인 거 같아?


수줍거나 들떠서 대부분 ´어른´에 가깝다는 표정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지?


딱 걸려듭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써주는 문장입니다.



Children wish they were grown -ups to do anything they want.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하는 어른이기를 바란다.


Grown -ups wish they were children to have no responsibilities.


어른들은 자신이 어떤 책임도 없는 아이이기를 바란다.



수긍하는 것도 힘이고 수긍하게 만드는 것도 힘입니다.


끄덕이는 열여덟, 열아홉이 그때 또 한 번 귀엽습니다.



저는 물론 ´어른´이 맞는 듯합니다.


아이이기를 바라는 것이 내 안에 어딘가 숨어 있다가 가끔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니까요.


나이만 먹었지,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스트레칭이 잘 안 됩니다. 팔, 다리가 쭉쭉 뻗지 않습니다.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한 지 꽤 된 것 같다고 인정해야겠습니다.


낡아가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받아들이겠는데 삐걱거리는 것은 속상한 것입니다.


그거 몰랐냐, 그게 늙는다는 것이라며 다시 짚어 주는 선생님 같은 세월입니다.



산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무공으로 던지고 받기를 시작했습니다.


엉거주춤 두 손으로 겨우 받아내던 공이었습니다. 상상이 되시죠?


그래도 그게 재밌다고 까르르 웃으면서 공을 따라가고 주워왔던 아이가 이제 열여섯,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갑니다.


어제 오후에는 모처럼 밖에 나와서 캐치볼을 했습니다.


여자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좋아하는 것을 그때가 제일 좋을 때라며 맞장구쳐줬습니다.


저는 좀 얄궂은 아비인 듯싶습니다.


산이보다 공부를 잘하는 여학생이라고 그러니까 후딱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공을 받으면서도 괜히 더 가벼웠습니다. 바람도 적당한 거 같고 마치 연인하고 데이트라도 나온 듯이 느껴졌습니다.



공이 쌩쌩 빠르고 힘찼습니다.


팔씨름도 이기겠다며 매일 턱걸이 연습을 하는 아이한테 이제 볼 스피드는 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유쾌한 역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씩 따라 잡힐 것입니다. 대신 근사하게 당할 것입니다.


새로 구입한 포수 글러브가 팡팡 소리도 좋게 사람 기분을 울립니다. 거기에도 즐거운 사연이 있습니다.


야구 용품이 - 모든 것이 그렇듯 -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여태까지는 가볍게 던지고 받는 놀이였지만 지난해 여름부터는 산이가 던지는 공을 받는데 손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아프다고는 하지 않고 포수 글러브가 필요하다고만 했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중고 마켓을 기웃거렸습니다.


그것도 부지런해야지 ´득템´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만큼 알뜰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랬다가 지난 크리스마스쯤에 하나 제대로 골랐던 것입니다.


가격도 좋고 품질이나 브랜드도 좋아 보여서 곧바로 진행, 마침 저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글러브를 사놓고 한두 번 사용한 것이 전부다며 무슨 용도로 쓸 것인지 물어봐 주는 것이 친절했습니다.


사회인 야구 동호회 같은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하고 캐치볼 하려고요.


그 말이 듣기 좋았다며 인터넷에 제시한 금액보다 절반을 그 자리에서 더 깎아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도 충분히 좋은 거 같다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는데 자기가 더 기분이 좋다며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은 이거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하고 우리 것이 된 글러브로 첫 등판을 한 것입니다.


공이 팡팡 꽂힙니다.


저도 기분 좋고 나도 좋아서 우쭐해지는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아이 같았습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오 4:17



새해, 첫 월요일입니다.


가볍게, 지금은 스트레칭. 그래야 오래 멀리 달릴 수 있습니다.


Let ´ s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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