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하고 짧은 대화 11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아빠는 계란찜하고 콩자반하고 뭐가 더 맛있냐고 물어오는 강이는 오늘도 내 맞은편에 앉아서 깨작거리고 있다. 내가 봐도 강이의 젓가락이 선뜻 나설 만한 찬은 아니다. 방금 해서 올라온 계란찜이 뚝배기 안에서 빛깔 좋게 그리고 느낌 좋게 뜨거운 김이 홀홀, 나는 입에 맞던데 애들한테는 외면당하는 콩자반, 이제 한 통 겨우 남은 지난해 어머니가 담아 주신 김치 - 저 김치를 다 먹고 나면 더 이상 엄마 김치는 먹지 못한다. 그리고 들기름을 발라 곱게 구운 김, 이 김은 송화가루로 유명한 염전, 곰소에서 사다 먹는 김이다. 발품을 팔아도 좋다. 따뜻한 밥하고 두툼한 김이 오싹하게 어울린다.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싶어서 지리산 자락을 내내 걸었던 오후가, 청파 靑波가 일렁이는 해남에서 장흥까지, 은파 銀波가 사람 속까지 달래주는 장흥에서 고흥까지 흥건한 길, 텁텁하고 물큰하고 외롭더라도 쓸쓸해서 오래오래 바람맞고 싶었던 옛날 길을 어쩌다 한 번씩 밥상에서 되감기를 한다. 그때 먹었던 밥들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다녔나. 나는 밥값이란 것을 도무지 치를 생각이 없었다. 대신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랐지만 어디 그게 나 같은 사람에게 가당한 일이던가. 그저 해풍에 그리고 황톳길, 사람 냄새 흥건한 바람길.


강이는 김치를 눈치껏 먹는다. 가위로 잘라 따로 새초롬한 접시에 담아주면 내 정성이 갸륵한 듯 몇 가닥 먹어준다. 그렇게라도 먹는 것을 바라는 나는 아비다. 딸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싶은 아비. 엊그제는 반포지효 反哺之孝를 아냐고 덤볐다. 강이는 나한테는 덤빈다. 말을 덤비고 글을 덤비고 사상을 덤빈다. 곧 신앙을 덤벼올 수도 있다. 덤비는 자들에게 축복을,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슬로건이다. 로마의 가도처럼 뻗어라. 그것은 정복의 길이기 전에 먹을 것과 사람의 이동, 사상의 소통을 이끌었던 길 아니었더냐. 세상의 길이 많더라도 로마의 길은 우뚝하다. 그 우뚝한 길이 갖는 힘으로 모든 길을 로마로 끌었듯이 너는 길을 내어라. 네 첫 가도는 나를 지나라. 아가야, 물어라. 반포지효를 자꾸 물어라. 나는 흥분한 기운을 감췄던가, 내 눈빛이 너를 좋아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덜 된 아비다. 무심할 줄 알면서도 무심할 것을 다시 바다에 나가 그리고 산길을 돌아 오막살이처럼 배울 것이다. 꼭 배워서 너에게 풍경이 되어줄까, 아니면 그윽하더라는 심상 心像 하나 안겨줄까.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그 이야기는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울컥하느냐. 나는 강이를 불러 자식 子息이라고 써준다. 저것은 숨을 쉰다는 거야. 숨에는 가쁜 숨, 편안한 숨, 한탄, 기쁨, 슬픔, 경탄, 그리고 목숨. 사람의 숨, 그것이 자식이야. 나는 너의 숨소리를 늘 듣는다. 네가 네 방에 앉아서 휴대폰을 볼 때도, 책을 보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내 숨에 네 숨을 손바닥 하나쯤 올려놓고 나는 세월을 보낸다. 너희가 있어서 나는 늘 전성기였다. 내가 밥값을 하고 몸값이 가장 가치로운 적이 그때였다고 또 한 바퀴 지난 어느 날에는 깊은숨으로 전할 것이다. 그때 나는 좋았다고. 너희는 그런 자식들이었다고. 너는 예뻤다고.


강이는 그런 김도 곁으로 본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나또를 먹어준다는 것. 계란찜하고 나또가 오늘 강이가 먹는 밥반찬이구나.

그게 무슨 말인지 알면서, 콩자반을 먹게 하려고 나는 응큼하게 비껴 친다.

강이야, 그 말은 틀렸어. 계란찜은 계란찜 맛을 내고 콩자반은 콩자반 맛이 나는데 둘을 견주면 한쪽이 당연히 손해잖아.

서로 같은 것들로 비교를 해야, 공평 지지, 그래 안 그래?

이번에는 표정을 감췄다. 한 방 먹였다. 좋다.


딱 3초 말이 없더니, 반격한다.

하지만 그 반격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머뭇거리다 당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즐겨 쓰던 전략이다.


아빠는 책을 읽을 때,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이 좋아, 이 책 저책 동시에 읽는 것이 좋아?

평소에도 초등학생인 강이에게 책 읽기를 강조하는 나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강이는 고맙게도 책을 찾아 읽는 편이다. 가끔씩 내가 건네주는 두툼한 책도 얼마가 걸리든지 다 읽어내는 편이다.

사실 나는 그때그때 편한 방식으로 책을 본다. 어떤 때는 15권짜리도 계속, 어떤 때는 채 한 권을 다 읽지 못하고 집안 여기저기에 읽다 만 책들을 널어놓는다. 강이는 그것을 걸고 들어왔다.

이제 그 속뜻을 알고 - 반찬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 이 책 저책 다 읽는 것을 좋아하지!

내 말을 기다린 표정이 저 표정일까.

기껏해야 사실을 왜곡하고 마는 사람을 내가 보고 있다는 저 13살짜리 - 어제는 공교롭게도 1월 1일이었다. - 의 고고한 시선이 차디찬 말 한마디와 함께 날아왔다.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던데..... '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 줄 잘 알아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강이에게 줄곧 했던 말은 책 한 권을 꾸준히 읽어내는 힘이었으니까. 내 겉이 그만큼 후줄근했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는 너는 너그러운 장수다. 알면서 되로 갚아주지 않는 너는 동심 童心이다. 야호.


후다닥 대화를 마치고 나는 밖으로 나섰다.

겨울 공기는 차갑기 마련이다. 하늘을 쨍하니 푸르다. 폐부 깊이 겨울 기운을 호흡한다.

호수에 살얼음이 졌다.

그 둘레를 걸으면서 허허실실 재미있는 것이 1월 1일을 인상적이게 했다.

후현 형하고 안부 인사차 나눴던 통화에서 '애들이 잘 커주니까 아무 걱정이 없다던 말' 그 말은 진심이었다. 진심은 등에 업으면 업을수록 사람을 가볍게 하는 신기한 힘을 지닌 말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사람으로 살게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 말을 손에 쥐고 걷는다.

호수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고 나도 그랬다.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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