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불어 ensemble.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하게는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쓰고 싶을 때 입밖에 나오지 않는 말. 유년 시절, 우리 집 앞 슈퍼 냉장고를 열고 바밤바를 고를까, 스크류바를 고를까 행복해할 때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던 아이스크림. 나한테 '고급'이란 느낌과 무엇보다도 내가 먹고 싶어 하던 '하드'가 초라한 것일 수도 있다는 차가운 깨달음을 안겼던 그 앙상블. 어쩐지 나 같은 사람은 연 緣이 없어 보이던 말.
산이를 낳고 돌 사진을 찍었을 때 나는 어깨가 무럭무럭 자라는 기분이었다. 자란다기보다 어깨에 훈김이 오르듯이 들썩거리며 나까지 공중에 띄울 것 같았다. '애기가 이쁘게 생겼네.' 나는 그 말의 진위를 감각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기뻤던 것 같다. 아니 기뻤다. 그 말들은 진심이었으니까.
강이를 낳고 사진을 찍으러 가서는 모델이 되었다. 거기 스튜디오에 사진 좀 내놓자고 그러는 것이 또 기분 좋았다. 덕분에 추가로 앨범 하나를 더 만들 수 있었다. 강이는 한동안 산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구름 위에서 산책시켰다. 그 길은 꽃길이었다. 어린이집을 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공원에 갈 때는 말할 것도 없이 크림을 듬뿍 발라 먹는 바케트 풍의 바람이 솔솔 불었다. 나는 행운아인가, 늦게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이 있고 강이 있는 풍경을 살았으며 살고 있고 살아간다.
내가 봐도 이름들이 멋지다. 어울린다, 앙상블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어울리는 것이 앙상블이다. 그냥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거기에서 오는 통일감까지 맡아서 마무리하는 것이 바로 앙상블이다. 위아래가 보기 좋게 빠진 그런 옷이다. 질감이나 재봉선, 색감, 분위기를 가능한 맵시 있게.
후배 하나가 강이 사진을 보고 넌지시 내게 던졌다. 나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말하던 '부잣집 애들' 그 모습이 이 모습이겠네, 형. 그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내가 바랐던 것은 부자였던가, 나는 부자가 된 적 없이 부자가 되었다는 황홀감이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를 감싼다. 춥지 않게 그리고 '하드'라는 말이 그리울 정도로.
처남은 딸 하나를 키우고 후배는 딸 둘을 키우고 내 여동생은 아들만 넷이다. 친한 친구는 아이가 없다. 각자의 모습, 위치에 어울리는 풍경을 짓고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사람들이 덜하고 더 낫다는 생각도 없다. 내가 한창 젊었던 시절에 다른 나라의 땅을 밟고 다니면서 나는 바람을 담을 줄만 알았다. 바람을 타고 나를 줄은 꿈에도 상상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 바람이 어느 날에는 살살 부는 것을 안다. 저도 그만 가보고 싶은 것이겠지. 내가 잡아 가뒀던 바람을 히말라야에 가서 풀어줄까, 산티아고 순례 도중에 놓아줄까 즐거운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엄마, 엄마한테 저 아파트는 어떤 의미야?
마침 엄마가 근무하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서 강이가 물었단다.
어떤 의미, 이렇게 물어오면 긴장하게 된다는 산, 이 엄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곳이지,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는 곳? 강이는 틈을 주지 않고 묻는 것이 누구 닮았단다.
엄마한테는 가족 같이 행복한 곳이야. 엄마, 나는 엄마가 그렇게 말하길 바랬어.
산, 이 엄마는 1월 3일 시무식에 그 장면을 그대로 직원들에게 들려줬단다.
아이디어가 되고 심상 心像이 되고 삶이 되는 저 꽃나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즐거운 고민을 허락한다.
저녁이 되면 밖이든 안이든 불이 하나씩 켜지는데 정작 내 불은 꺼진다.
나는 쉬 피로하다. 시나브로 기운이 내 몸을 겨워하는 것이 더 이상 불쾌하지 않다. 내 하루가 잘 저무는 것에 쏠쏠한 감사를 표하고 먼저 퇴장하는 가벼운 인사, 그것이 편하다.
산이야, 이거 조립해서 사용하는 것인데, 내가 허리 때문에 서서 쓰는 책상을 주문했거든. 그 복잡한 레고도 맞추는데 이것 좀 맞춰줘라. 열여섯이 된 산이에게 기념이 될까, 나한테 기념이 될까.
새벽에 거실에 나와서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깔끔하게 높은 책상이었다. 어울린다.
산이는 열여섯, 강이는 열셋. 그만큼 시간을 지나오니까 내게 떠오르더구나. 해가 떠오는 것처럼 그 말이 떠올랐다.
'앙상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