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이 오래 걸렸습니다.
사도들의 기록, 사도행전은 4 복음서와 비교하면 사람이 느슨해지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만두지만 않으면 된다는 감각을 살립니다.
꼭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허허실실´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의 웃음소리를 닮았거나 그 모양 같기도 한 말입니다. 허허실실 虛虛實實.
허한 듯하고 실한 듯 허하다.
이 말 같으면서 저 말 같은 이 말은 제가 주머니에 차고 다니고 싶은 말입니다.
빈 곳에 드는 한 줄 햇살을 무언가 으뜸으로 치는 취미가 저에게 있습니다.
어디선가 그 맛을 봤던 적이 있었던지 저도 알지 못하게 그것을 찾습니다.
아마 영영 기억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워하니 조금은 안타까운 사연인 듯도 싶습니다.
빈, 거기가 허 虛 아니겠습니까.
비었는데 있는, 그것이 옳게 자리 잡은 ´빈 opening ´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허 虛는 공 空이 아닙니다.
공 空은 무 無를 지향하는 신비이며 그것은 허무를 모릅니다. 거시 巨視 적인 우주는 저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운행되고 있습니다. 허무는 저와 같은 존재들이 내뿜는 숨결로 이루어진 무늬 아니겠습니까.
공허한 것은 우주, 허허로운 것은 저입니다.
성경을 적어보는 일은 그것을 맛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끝나지 않을 작업을, 시지프스의 바윗돌처럼 다시 또다시 적고 있다가 홀연히 삼매에 닿는 때가 있습니다.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 것이 돌을 쪼고 비어있는 곳에 소리를 채우고 목을 적셔줍니다.
허허실실 사도행전을 지나왔습니다.
한 번도 쓰기 싫지는 않았지만 잊고 싶은 만큼 많이 잊고서도 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힘이 길러진 것입니다.
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병법에 ´허허실실´이라는 게 있소. 허한 곳은 실한 듯, 실한 곳은 허한 듯 꾸미라는 말이지요."
로마서를 쓰고 싶은지도 모르게 쓰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은 이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여행이 계속된다는 즐거움을 나그네는 알고 있습니다. 전체 안에서 운행하는 것들은 쉼과 직선 그리고 곡선에서 자유를 향유합니다. 그러니 어디까지든 가고 싶을 테지요.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 16:15
잘 사는 일이 잘 여행하는 일이며 그것이 복음이 되면 일거삼득입니다.
성경을 읽고 쓰면서 공부를 합니다. 또한 여행도 합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면서 바오로가 되는 그런 여행 말입니다.
오늘도 좋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