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59

아침에,

by 강물처럼

내가 말을 잘 못했을 때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답답해했으며 어떤 사람은 친절했습니다.


모두들 바쁜 세상에 말도 못 하고 있으면 둘 중의 하나의 대접을 받습니다.


바보처럼 막 대하거나 아기처럼 살살 다뤄집니다.


물론 그 참사를 초래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말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상대에게 기대되는 최소한입니다.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 벌써 이십 년 전 일이 되었으니까요. - 한때는 말하는 중간중간에 일본어가 섞여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한국에서 일본말을 섞는다면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당연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접수를 하며 ´아노´ 그러는 바람에 눈앞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만 적도 있습니다.




´에이, 뭐야. ´




그 표정, 에이 그러면서 일그러지는 표정은 일품이었습니다. 젊고 예쁜 간호사가 그러는 것이 안 됐다 싶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말이 나오냐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남들은 유학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유학이 아니라 귀양 같은 것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흑산도나 제주로 유배되는 그 귀양살이 말입니다. 자발적으로 내린 유형 流刑이었으며 스스로 갇혀 든 위리안치였습니다. 세세한 사연까지는 여기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일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잘리지 않으려고´ 애가 탔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너무 못해서´ 일하기 어렵다는 말이 면접 보는 내 앞에서 오고 갔으니까요. 말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줄 모릅니다.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배웠던 거라서 사람을 콕콕 찌를 때가 있습니다. 무슨 통증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면 잊힐 만한데,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좋아합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마치 매국노나 친일 같은 느낌이 나서 눈흘김을 받기 딱 좋습니다.


그러니까 젊고 예쁜 간호사처럼 아무렇게나 쏟아놓는 것들이 목격하게 됩니다. 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서두르는 편입니다.


저는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인 듯싶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성경을 필사하는 일, 저는 그것을 영어와 일본어로 하고 있습니다.


잊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잊을까 봐 매일 닦아놓는 것입니다. 구리 반지를 닦는 아낙이 되는 것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각국의 언어로 소장하고 싶다던 사람이 있었는데 저는 성경을 그렇게 적어보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중국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도 좋습니다.


요즘 로마인 이야기로 이탈리아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달아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단지 저는 언어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언어를 자꾸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에 가 닿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환하게 만듭니다. 허실생백 虛室生白, 내가 목격하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빈 방에 볕이.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파리에 있는 그 유명한 서점에 쓰여있다는 말,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그는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른다. ´




누군가는 ´막´, 누군가는 ´잘´


그렇게 살 것입니다.


다 살고 나니 그것이 후회되더라는 말도 기억합니다.


´더 친절해도 좋았을걸. ´


내 인생에게 친절한 내가 되는 것, 빈 공간에 볕이 듭니다. 환한 일입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 루카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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